예상했던 대로 우울하게 만드는 이야기, 울분이 치솟게 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이어지다, 무력감으로 손을 놓게 만드는 책이다. 더구나 요즘이 어느 때인가. 우리라는 존재는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 힘도 쓸 수 없고, 그저 그 큰 나라들의 몸살에 벌벌 떨며 공포 속에 지내야할 수밖에 없는 그런 답답한 상황에 빠져있지 않은가.
하지만 허전하다. 어두운 전망에 허전한 것이 아니라, 허술한 주장을 한 참이나 들어준 것 같아서 허전하다. 저자는 이 책을 강의의 성격이라 하고 또 강의록 형태로 구성했지만, 강의는 아니다. 교과서의 성격은 더더구나 아니고. 표현이 좀 심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은 무조건 자신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라 믿고, 거침없이 A와 B 또 C를 비난해가는 그런 스타일이다.
물론 나 자신도 이 책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한다. 또 저자의 대안이란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이 누리는 일부 계층의 뿌리와 형성과정 또 그들끼리의 머니와 짜고 도는 권력 게임. 또 건전한 제3섹터의 필요성. 아니, 동의라기보다는 원래부터 그 비슷한 방향의 생각이었기에 이 책을 손에 들었던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좀 심하게 표현해서, 그 일방적 주장의 나열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다가 책을 덮으려 이 책을 손에 들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50분짜리 교양강좌라면 이 책 스타일에 잘못된 것이 없다. 개괄적 설명으로 전체 모양의 윤곽을 보여주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 하지만 90분짜리 강의라면 좀 달라야하고, 한 학기 분량이라면 아주 달라야했다. 치밀한 논리의 전개가 없지 않은가. 데이터가 없지 않은가. 꼭 학문적 깊이와 통계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주장이란 무엇인가. 주장은 언제 설득력을 갖는가. 아무리 자신의 주장이 스스로 생각하기에 명백히 옳다 하더라도, 독자에게는 왜 그 주장이 옳을 수밖에 없는지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던져주는 느낌이 아닌 논리. 또 그 논리의 전개.
이 각도에서 보면 이렇고 저 각도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무슨무슨 현상 또 어떤어떤 자료를 보면 이러이러하니...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면 굳이 저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슨 직설적 구호나 메시지를 던지지 않아도 독자가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서글퍼진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손에 들었던 Paul Krugman의 Peddling Prosperity와 자꾸 비교되는 것이. 또 우리 한국사회와 경제의 한계는 아이디어와 의견의 결핍이 아닌 생각의 깊이와 논리적 사고의 결여라는 평소의 생각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이. 저자 자신도 주장하듯 물건의 품질은 장인정신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대학 강단에서 젊은이들을 가르친다는 저자의 책을 접으며 한국인과 한국이라는 재화의 품질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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