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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뚝틀이 2009. 1. 1. 20:14

   
     Ξωκρατηζ, 469-399 BC                         The Death of Socrates, by Jacques-Louis David (1787)

소크라테스의 말(20세에 그의 밑으로 들어가 그가 죽을 때까지 함께 했던 플라톤이 정리)에 대해 무슨 독후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소장의 내용 :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하는 자이며 괴상한 사람이다. 그는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하고, 그런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친다.
이에 대하여 500명의 재판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Apologia중 마음을 사로잡았던 부분의 문장 몇을 정리할 뿐.
   
소크라테스의 제자를 자처하는 카이레폰Chaerephon이 델포이 신전(델포이의 신은 당연히 아폴론)에 가서 무녀에게서 받아온 신탁 내용.
- 소포클레스는 현명하다. 에우리피데스는 더욱 현명하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만인 가운데 가장 현명하다. -

소크라테스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에, 자기보다 현명한 사람을 찾아내어 그를 신전에 데리고 감으로써 그 말이 옳지 않음을 증명하려 賢人 찾기에 나섬.

우선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정치가를 찾음.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그 자신도 자기가 매우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에 실망, 이를 그에게 설명하려다 그와 또 그 자리에 동석했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사게 됨. 돌아오는 길에 생각하기를, 그 사람도 나도 美나 善을 모르고 있지만, 그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 안다고도 생각하고 있지 않으므로, 오히려 나는 그보다 현명하다.

그 다음으로 훌륭한 시인들을 찾아, 그들 작품 중에서 가장 정성들였다고 여겨지는 구절들 제시하며 그 의미를 물음으로써 무슨 가르침을 얻으려 함. 하지만, 시인은 지혜가 있어서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소질과 영감에 의해 시를 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은 훌륭한 말을 많이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예언자나 점쟁이와 같다. 그런데도 그들 역시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을 뿐임.

마지막으로 匠人들을 찾아 나섬. 하지만, 그들은 훌륭한 기술자이므로 자신들이 모든 종류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결점이 그들의 지혜를 가리고 있었을 뿐임.

그리하여 소크라테스 스스로 해석한 바는
“오 인간들이여,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지혜가 사실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가 가장 현명하니라.”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음.
세상에서 현명한 사람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사실은 현명하지 못함을 일깨워주니 많은 사람들을(그것도 영향력이 큰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게 되었고, 또 소크라테스를 따르는 (사실을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에 모욕당하는 현인들의 모습을 더 즐기는) 부유층 자제들이 때로는 그들 스스로 소크라테스의 흉내를 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심어주는 경우도 곁들여져, 사회에가 그 젊은이들 보다는 오히려 그 배후의 원천적 존재인 소크라테스를 더 원망하게 되었음.

따라서 지금의 이 재판은, 그들이 지식이 있는 체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탄로 났다고 고백할 수 없기 때문에, 엉뚱한 이유로, 또 수와 권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고발하여 행해지고 있는 것임.

여러분들이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다신 다른 조건을 제시할지 모르지만, 나는 분명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험을 헤아려서는 안 됩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면서 오직 올바른 행위를 하느냐 나쁜 행위를 하느냐, 곧 선량한 사람이 할 일을 하느냐 악한 사람이 할 일을 하느냐 그것만을 고려해야합니다.
죽음이 최대의 선인지 아닌지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죽음을 최대의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요? 인간으로 하여금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확신하게 하는 무지가 아닐까요? 나는 冥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므로 알고 있는 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不正과 더 훌륭한 자에 대한 不服從은 惡이며 不名譽임을 알고 있고, 확실한 악보다는 오히려 가능한 선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나의 말은 되풀이 될 것입니다. 육신이나 재산을 생각하기에 앞서서 우선적으로 영혼의 최대의 향상을 고려해야합니다. 돈으로부터 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부터 돈과 기타의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입니다. 만일 이러한 가르침이 청년을 타락시키는 이론이라면 나는 해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나의 행동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 주십시오, 비록 내가 몇 번이고 사형을 당한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과연 이것이 2400년 전 그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