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hamed El-Arian, When markets collide
책이라기보다는 강의록을 마주한 느낌이다.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마치 마주앉아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해주듯, 현 경제위기에 대한 여러 관점을 차분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특정관점을 부각시킨 후, 주관적인 견해를 일방선언 하는 식으로 주입하려는 그런 책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IMF, 채권펀드 운용회사 PIMCO, 하버드 경영회사(HMC)라는 성격이 아주 다른 세 회사를 거치며 편향되지 않은 시각을 키울 수 있었던 저자의 배경 때문이리라.
원제 When markets collide가 의미하듯, 이 책이 주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새롭게 변한 경제 환경에서의 신구세력 사이에 또 신구금융시스템 사이에 일어나는 충돌과 그 갈등의 후유증에 대한 것인데, 번역판에는 새로운 부의 탄생이라는 무슨 예측서 분위기의 이름을 달았다. 판매수익을 늘이기 위한 이런 편법, 이것 역시 현혹의 버블 아닐까?
이 책이 1년만 늦게 출간되어, 현 경제소용돌이의 본격적 진행 시기인 2007년 중 후반까지의 상황도 다루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며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아니, 그렇기에, 무슨 대증요법이나 생존기교 같은 얄팍한 비법을 기대함 없이, 큰 틀의 그림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는 느낌이다. 앞으로 또 어떤 형태의 위험이 닥쳐올지 또는 무슨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지 그런 것에 대한 대비목적이라면 오히려 이 책이 제공하는 그런 바탕원인에 대한 이해가 훨씬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런 어떤 실용적 목적의식 아닌 단순히 현 상태의 이해라는 지적호기심 충족의 관점에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책은 아홉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지만, 내용적으로 볼 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현 경제위기 이전에 관측되었던 징후, 현 상황,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서 각 경제주체의 역할과 위험관리, 이렇게 세 부분으로. 풍부한 경험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부터의 살아있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로부터 시작해, 시장의 변동성이 증폭되며 그 발생빈도가 잦아지는 궤도이탈의 신호, ‘갑자기’ 드러나는 위기현상, 신구 시스템 충돌이 빚어내는 현 과도기의 성격, 투자자 또 정책결정자의 역할과 또 그 각 경제주체 관점에서의 위험관리 등에 관한 내용에 관해서.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예리한 관찰력. 그것이 저자의 강점이고, 이 책의 장점이다. 저자는 말한다. 현 어려움은 신흥경제국의 부축적과 그 역할증대가 아직 현실에 걸맞은 금융시스템과 운용기법을 만나지 못해 일어나는, 또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금융기법들이 과거의 시스템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런 현상이라고. 또 이것이 일시적 요동으로 그칠지(본격적 위기 이전에 이 책이 나왔음) 앞으로도 증폭되며 계속될지는 경제주체들의 업그레이드 여부에 달려있다고.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미국 또 IMF의 역할과 입지는 점점 줄어들 것이고, 각국의 국부펀드 위상과 비중은 높아질 것이라고.
경제학자도 경영학도도 아닌 일반인들도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야하는 현실이 슬프게 느껴지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론 어쩌면 반가운 일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뉴스를 도배하는 경제관련 기사들, 어지럼증을 더욱 더 증폭시키며 쏟아져 나오는 각종 정책들. 이들에 대한 막연한 느낌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저변이 확대되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국격의 업그레이드 아니겠는가. 저자의 표현대로 시스템 붕괴할 때 그를 막기 위한 공적부문의 적극적 노력이 있다하더라도, 그 어떤 조치도 모든 시장참여자를 보호할 수는 없다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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