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층은 선이 면을 만드는 수채화 작업이었지만, 이제 이층은 하나하나의 선이 그대로 살아나는 판화작업이 될 것이다. 어떤 모양을 만들 것인가. 원래 구상이었던 귀틀집이 당연히 우선순위 제1호다. 좋은 그림 만들기에 성공만 한다면 지금이라도 일층 레미콘 작업 때 모른 척 외면했던,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집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집착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수많은 종이들이 N의 연필 맛을 보고 휴지통으로 들어간다. 들어가고 또 들어간다. 하지만 아무리 여기를 올리고 저기를 내리고 돌려도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질 않는다. 작업복 바지위에 삼베저고리 입히기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번엔 아주 편하게 이층까지 레미콘을 쳐버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당연한 유혹이다. 하지만 이층까지 레미콘 올릴 생각은 고려의 여지도 없는 탈락이다.
이번엔 칸트가 제 발로 찾아온다. 사람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 어떤 결론에 도달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결론은 이미 생각 초기에 본능적으로 내린 것이고, 생각 또 생각한다는 것은 그 본능적 결론을 합리화시키는 이유를 모으는 것뿐이라고. 그 사람 참 용한 사람이다. 어떻게 내가 그럴 줄 그 오래전에 알아냈지? N의 농담벽이 혼잣말에 살아난다. 오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역시 황토집이다. 처음부터 N의 마음은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황토벽을 입히는 보통의 집이었지만, 단지 비용 때문에 귀틀집이라는 대안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던 것이었다. 결국 시멘트벽 위에 황토벽이 앉는 작업복과 비단저고리 모양으로 생각이 굳어진다.
문제는 이 어울리지 않는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물론 아래층 벽도 황토로 덧칠하여 위아래 전체적으로 황토분위기를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방법으론 집이 오히려 더 흉물스러워질 것 같다. 그렇다면 낙엽송 피죽으로 위아래를 모두 덮어버리면 어떨까도 생각해본다. 하지만 얇은 나무껍데기가 벽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모습은 더 궁상맞을 것 같다. 이위에 그리지만 말고 한번 직접 보자. 제재소에 가서 여덟 치 낙엽송을 반으로 짜갠 것 잔뜩 실어와 한쪽 벽에 붙여 본다. 우려했던 것만큼 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건 아닌데’ 수준이다. 예술가가 따로 있던가. 아예 일이층 벽 전체를 화폭삼아 선도 그어 보고, 창문 사각형도 채워보며, 형상물을 만들 생각을 하여본다. 한복처럼 몸을 철저히 가리지 말고, 파티에 입고 나가는 옷처럼 황토 속살을 약간 드러나는 것이 더 섹시하지 않을까. 가로세로 무늬를 넣으며 블라우스를 입혀보니, 왼쪽 가슴엔 새끼 학이, 오른쪽 가슴엔 어미 학이 날아오르는 모양이 된다. 기술적으로 어려움은 있겠지만, 우선 보기엔 그럴 듯하다.
X는 시큰둥하고, Y는 야릇한 미소를 짓는데, C의 표정이 환해진다. 그러면 됐어. N이 속으로 무릎을 친다. 마침 창백한 서생이 집을 짓는 현장이 궁금하여 이곳을 찾았던 이 분야의 대가가 N의 스케치 더미를 들쳐보더니 한마디 한다. 야, 너 이제 전문가 다 됐구나. 하지만 한 가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을 수 없구나. 빗금은 피해. 어떤 건축가도 결국은 빗금무늬를 후회하거든. 그래? 그럼 난 빗금을 넣지. 남들과 다른 집.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거든. N의 구상은 끝났다.
아파트와도 다르고 펜션 같지도 않은 집을 짓는다고 할 때 N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것이 집 어디인가에는 천장이 아주 높은 방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고, 거실 위를 뻥 뚫고 나머지 부분만 슬라브로 처리한 것은 바로 이런 가능성을 위한 것이었다. 거실 천장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나게 하며 높은 천장을 만드는 것은 전원주택의 기본이다. 하지만 22자 폭의 거실에 12자짜리 서까래를 비스듬히 걸면 처마를 뽑을 여유가 없어진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N은 C와 Y의 자문을 구한다. 대들보를 하나만 올리는 대신 쌍으로 올리기는 것이 그 답이다. 대들보 사이의 간격, 서까래의 길이와 각도, 또 지붕 높이와 이층 바닥 높이를 고려하여 계산하니 거실 천장의 높이가 4미터나 된다.
쌍 대들보 위쪽에 잔디를 입히거나 야생화를 뿌리기로하고, 지붕그림을 그려보던 N이 질겁한다. 그 지붕이 생각대로 각이 날카롭게 진다면 몰라도 흙을 올리다보면 어느 정도 둥글게 될 수밖에 없는데, 이건 영락없는 무덤모양이다.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라고 가볍게 웃어넘길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무덤모양. 그렇다고, 여기에 단순히 지붕을 올리기에는 그 넓은 공간이 너무 아깝고, 또 합각지붕이 여기저기 올라가있는 어지러운 모양이 된다. 이럴 경우엔 오랜 궁리가 있을 수 없다. 테라스로 처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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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붕 차례다, N은 지난겨울 따뜻한 털모자 사러 가게에 갔던 기억을 떠올린다. 얼마나 고르고 골랐는지. 보온덮개라는 당연한 기능보다는 그 모자를 쓴 N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따라 그의 안사람 고개 흔드는 방향이 달라졌던 것. 지붕이라는 것도 단지 햇볕과 눈비로부터 집을 보호해주는 당연한 기능보다는 그 모양과 재료에 따라 집의 분위기를 살리고 죽이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우선 모양이라는 부분에는 당연히 주변 소나무 숲과의 조화가 제일의 관점이고, 한쪽 테라스부분과 다른 한쪽 황토 집 부분에 어떻게 어울리는가가 제이의 관점이다. 전원주택에서 흔히 보는 뾰족지붕이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얽혀있는 모양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두덩어리의 지붕으로 단순화시킨다. 그렇게 되면 지붕의 폭이 넓어져 높이도 올라가게 되는데, 비탈길 소나무의 높이를 고려하여 물매를 최대한 낮춘다. 앞서 그린 두 마리 학을 그 물매에 맞춰 다시 그려보니 어느 정도 봐줄만 하다.
마침 때맞춰 주문했던 원목이 들어온다. 원래는 귀틀집 용도로 주문한 것인데, 대여섯 치 굵기의 더글러스는 이제 더 구하기 힘들다는 목재상의 하소연도 있었고, 또 이미 상황도 바뀌어 원래주문을 고집할 마음도 없었기에, 그곳 목재상에 재고로 남아있던 스프루스를 그대로 받아오기로 타협한 것이다. 그런 중간 과정을 알지 못하는 N의 안사람이 열다섯 자 길이 일고여덟 치 나무가 한차 가득 실려 있는 것을 보면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N을 보며 묻는다. 당신 정말 이런 나무로 혼자 집을 지으려 했던 거야? 일하던 사람들도 자기들끼리 쳐다보며 웃는다.
이제 이 스프루스 기둥과 황토벽에 어울리는 지붕 재료를 생각할 차례다. 당연히 아스팔트 슁글은 고려대상에서 탈락이다. 기와지붕을 올릴 수도 없다. 모양도 모양이거니와 그 큼직큼직한 지붕무게를 견디는 일이 보통이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초가지붕도 아니다. 그 넓이, 그 물매에서 초가지붕의 배수기능이 떨어질 뿐 아니라. 모양도 전혀 어울리질 않는다. 제재소에 가서 타스마니아 목재를 켜고 남은 피죽을 사다 모형에 얹어보지만 너무 누더기 냄새가 난다. 이번엔 멀리 가평까지 가서 잘 다듬어진 낙엽송 껍질 조각을 사와 시도해본다. 그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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