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개솔숲 이야기

c-10 낭만의 대가

뚝틀이 2009. 1. 18. 17:22

황토벽돌 찍기에서 N은 낭만의 대가가 무엇인지를 톡톡히 배운다. 공장에서 찍은 황토벽돌을 사왔다면 단순히 단가 곱하기 개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본 공장벽돌들은 색깔이 너무 맑았고, 모양도 너무 완벽했고, 또 무엇보다도 너무 단단했다. 겹치는 ‘너무’에 ‘황토 성분도 들어있는’ 벽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C의 말을 빌면 하루 삼백장만 찍는다면 직접 찍는 것이 오히려 더 경제적이란다. 벽돌공장에서 사오는 것보다 비용이 절감된다니, 한번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판단한다.

 

서너 명이 긴 자루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찍어내는 벽돌의 투박한 모양에 반한다. 한편 이런 ‘대롱대롱’의 비인간적 모습에 그의 마음이 아파온다. 40대 D와 G는 그래도 괜찮지만 50대 E와 F에겐 일종의 연민까지 느낀다. 하지만 그건 처음 이틀뿐이었다. F의 ‘한 대 피고 일하지.’가 잦아들더니, ‘더위엔 음료수보단 맥주가 더 낫지.’가 나오고, ‘복날인데 뭐가 있어야하는 것 아냐.’의 당위론으로 발전되며, 일터인지 야유회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급전된다. 지금은 고용주지만 나중엔 그의 이웃이 될 N은 그 ‘나중’을 생각해 모질어질 수도 없다. 벽돌이 쌓여가는 속도는 이제 어느 음악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디미누엔도와 리타르단도의 극치를 달린다.

 

고민 끝에 N이 테스트를 결심한다. 이들 D,F,G에게 예정에도 없었던 나무껍질 벗기는 일을 시킨다. 변화라면 변화요. 벽돌을 보며 올라가는 혈압을 진정시키기 위한 궁여지책이기도 했다. D 혼자서 통나무 셋을 해치우는 동안 G와 F는 한 조가 되어서도 겨우 통나무 둘의 옷을 벗긴다. 아침 새참 먹으러 갈 때까지 두어 시간 남짓의 결과다. 상식적 계산이 맞는다면 그날 스무 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열 몇 개의 통나무가 옷을 벗어야 했다. 저녁 때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다듬어진 것은 단 일곱 개.

 

소위 말하는 궂은일에 매달리는 잡부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소위 전문가라 자처하는 목수의 세계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여기에서는 뒷걸음 현상까지도 일어난다. 나무 네 조각 짜 맞춰 창문틀 하나 만드는데 이틀이 걸렸다는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다. 기둥높이가 틀렸다고, 그 기둥 밑에 작은 나무토막을 받쳐놓는 모습은 몬도가네에 다름 아니었다. 그 나무토막 금방 썩어 집이 내려앉거나 기울어질 것은 초등학생도 알 일이다. 그래도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 그 사람이 쉬는 날을 골라, 철근 콘크리트로 주춧돌을 만들어 그 토막들을 바꿔 넣으면서, 그 기둥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던 지난 주 일을 머리에 떠올리며 N은 쓴웃음을 짓는다.

 

어쩌다 한번 일어난 일이라면 소위 최적화를 위한 필요비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건 수학문제다. 같은 성격의 일을 하는데, X는 나흘에 걸쳐 일을 하고, Y는 이틀 만에 그 일을 마친다면,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능력자의 두 배의 임금을 받는다는 결론이고, X가 엉터리로 저질러놓은 일을 그 다음날 X와 Y가 다시 뜯어내고, 셋째 날 X,Y가 비로소 제대로 했다면, 그동안 이루어진 일은 X 하루치 분량에 불과하지만 X,Y에게 지불하는 임금은 2x3=6이다. 정성들여 계산해 주문한 재료가 떨어져 다시 주문하고 운반해올 때까지의 공사차질로 인한 인력낭비는 또 어쩌고. 손해배상 청구? 하!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를 완전한 혼동의 세계로 빠져들며 N은 공사 중단을 선언한다. 제1막은 결국 N의 항복으로 끝난 셈이다. 그들은 멍한 N을 뒤로한 채 휘파람불며 다른 일터로 옮겨가면 그뿐이니까.

 

대한민국 주식회사. 과연 우리에게 앞날은 있는가? N이 집을 짓는 동안 계속 맴도는 질문이다. 제조업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쓰는 재료는 거의 다 중국이나 미국에서 들여온 것이고, N이 가곤 하는 철물점에선 미련하게 국산 기기를 고집하지 말고, 일제 쓰라고 강권하다시피 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양질의 서비스 산업뿐인데, 직업정신이 사라진 우리 사회에서 무슨 서비스 산업이 발을 붙이겠는가. 오호 통재라. 오호 흑흑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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