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개솔숲 이야기

c-11 거울

뚝틀이 2009. 1. 18. 17:36

이쪽에선 쉼표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건너 맞은편 언덕위에서 새 음악이 시작된다. 전혀 다른 음악이. 마치 전쟁작전을 방불케 하듯 새벽부터 장비가 시끄럽다 했는데, 어느 새 사라지고, 사람들 까맣게 달라붙었다 했는데, 또 어느 새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규모의 경제. 그렇다고 맞은편에 들어서는 집이 큰 규모라는 것은 아니다. 그쪽 감독의 설명에 N의 고개가 끄덕인다. 여러 곳에서 동시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집 하나에 매달리는 것과는 근본 모양부터가 다르단다.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어디에서 무슨 재료를 구해, 어느 때 갖다 놓아야 할지, 또 어떤 일은 아예 통째로 떼어 누구에게 맡겨야할지. 자기가 신경 써야 하는 함정이 어디서 발생할 수 있는지 모든 것이 훤하다. 새참의 모습도 다르다. 공사장 한쪽 모퉁이에 마련한 컵라면으로 충분하단다. 이것이 바로 완성된 설계도를 받아 후닥닥 집을 올리고 열쇠를 건축주에게 넘기는 효율적 건축방법이다.

 

그가 일하는 모습에 N이 자기를 비춰보면 거의 모든 것이 반대방향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 쉼표 중 아닌가. 사실 인터넷이라는 경험보고서의 창고를 수없이 들락거린 N이 그런 것도 몰랐던 것도 아니었다. ‘내 본래 의도했던 대로 귀틀집이나 지었다면, 그런 효율성 따위완 상관없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이젠 때늦은 푸념일 뿐이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저 밑에 있는 식당에 차타고 가서 충분한 시간을 즐기는 이쪽의 그 모습, 인간적 작업장이라는 사치스런 이름의 허영일 뿐이다.

 

그렇다면 N이 지금 집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직영이라고 부르는 이 방법과 앞집 방법을, 건축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비교한다면 어떨까. 얼핏 생각에 N이 비록 직업적 건축업자의 효율성 네트워크에 속해 있지도 않고 인부를 다루는 노하우도 없지만, 그래도, 그 낭비요소가 건축업자의 이윤폭보다 작다면, N쪽이 더 유리할 것 같다. 사실 공사를 시작할 때만해도 N에게 그런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비용은 비용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밑 빠진 독에다 부어넣는 형국에서 그런 비교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렇다면 잘못된 선택인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본다. 시공업자에겐 효율성과 비용절감이 절대적 명제다. 예정에 없던 작업변경은 효율성에 큰 차질을 일으킨다. 거기에 적지 않은 추가비용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만약 N이 건축업자에게 일을 맡기고 나서, ‘아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 주세요.’ 하는 식으로 생각이 바뀔 때 마다 작업변경을 요구했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악몽중의 악몽이었을 것이다.

 

쉼표 속에서, 앞집에 비친 거울을 보면서, N이 자신의 집짓기에 대한 점수를 내어본다. 65점은 족히 될 것이고, 아무리 낮추어 잡아도 60점은 넘는다. 만일 55점이었다면 그의 불같은 성질에 일찌감치 집짓기 중단이 아니라 포기를 선언했을 것이다. 지금의 쉼표는 N이 본래 기대했던 80점에서 모자라는 15점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그날그날 기록되는 N의 건축일기 사이사이엔 65점이나 되는 점수를 쌓아준 거의 100점 만점의 주인공에 대한 코멘트들이 실려 있다.

“난 이런 분위기가 정말 좋다. 이 들과 함께 있으면, 자질구레한 어려움 따윈 저절로 잊게 된다.”

“C.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그에게서 본다. 내가 무슨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그의 생각은 일단 긍정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예의상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난 안다. 어려운 일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응집력과 순발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로부터 느낀다. 그 흔한 남에 관한 험담 또한 내 그의 입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 모양의 내 집짓기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Y. 이 양반 나이는 얼마일까. 물어봐도 웃어주기만 하니 내 그저 나보다 많거니 짐작만 할뿐이다. 집사람도 그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을 본적이 없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하던가. 그는 일당을 받으러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일과 도전을 즐기려 이곳에 오는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나이가 많지만 누구보다도 더 날렵하다. 아무리 일이 어려워 보여도 그의 명언은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해보죠 뭐. 사람 하는 일에 못할 것 뭐 있겠어요. 진정한 프로의 정신을 그에게서 본다.”

 

N은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란 것도 결국 그런 것 아닌가. 65점이나 되는 것에 고마워해야할 일이지, 35점밖에 지나지 않는 그곳에까지 신경을 써서 뭐하겠냐고. 고맙다 거울아.

'학고개솔숲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c-13 전문가  (0) 2009.01.18
c-12 피죽 vs. 너와  (0) 2009.01.18
c-10 낭만의 대가  (0) 2009.01.18
c-9 시인과 농부  (0) 2009.01.18
c-8 햄릿이냐 돈키호테냐  (0) 2009.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