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개솔숲 이야기

c-12 피죽 vs. 너와

뚝틀이 2009. 1. 18. 19:29

‘간단히 끝내자. 간단히 끝내자.’ 마을회관에서 내려다보이는 쉼표속의 레미콘 덩어리를 내려다보며 N은 다짐한다. 사랑의 늪에서 헤어나는 것은 자유의지와 상관없다하지만 낭만의 늪에선 마음하나 먹기 나름이다. 하지만 N은 이 낭만의 늪에서조차 생각 따로 몸부림 따로 허우적거리고만 있다. 조심스레 작업을 재개한다.

장마에 태풍까지 겹치며 상황이 험악하게 돌아간다. 지붕이 아직 덮이지 않아서 비 한번 올 때마다 전쟁이 따로 없다. 아래층에 쌓아둔 황토벽돌은 조금만 젖어도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사방에 뚫어놓은 전기와 물통 배관에 흙이라도 차면 낭패기 때문이다. 지붕 올리기가 급하다. 그렇다고 대충 때울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방바닥을 아무리 데워도 위에서 찬 기운이 내려오거나 결로현상이 생기는 곳에 낭만이 깃들 수 없는 것 아닌가. 더구나 해발 460미터의 이곳에서 말이다. 서까래 천장을 두꺼운 패널로 덮고, 또 그 위에 두터운 방수시트로 철저히 사전작업을 한 다음, 거실 쪽 지붕은 아예 철근 콘크리트로 돔 모양 처리를 한다. 이 정도면 구조문제나 웃풍문제에서 자유로울 것 같다.

 

이제 그동안 한쪽 곁에 쌓아놓았던 낙엽송 피죽을 그 위에 올릴 차례다. 비바람을 막는 기능은 이미 다 갖추어 놓았으니, 이 피죽을 올리는 것은 그야말로 낭만연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집짓기과정에서 드문드문 맞보는 창조의 순간이기도 하다. 어떤 길이로 어떻게 겹쳐놓으며, 껍질의 색깔을 어느 정도 남겨놓을까 N과 C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데, 돌발변수가 생긴다. 앞집 아저씨가 찾아온 것이다. 동네를 거지로 만들려하느냐는 그의 말을 N은 처음엔 그저 농담정도로 받아들이고, C도 그다지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여럿의 힘을 실어 저 아래 ‘~따라 ~따라’라는 카페의 지붕을 보라며 점점 더 강한 압박으로 다가온다. 누구의 눈에는 멋있게만 보이는 그 집 지붕이 누구에게는 궁상떠는 모습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외지인이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처음부터 말썽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좋다. 더구나 지붕이야말로 모자 아닌가. 마을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피죽지붕은 포기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아스팔트 슁글, 기와, 또 초가지붕 모두 일찌감치 지붕재료 후보에서 탈락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양이고 뭐고, 처음부터 이층에도 슬라브를 치는 것인데. 때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상황을 모르고 집 구경 왔던 방문객들은 패널 지붕을 보며 그것이 최종마감인 줄 알고 다 좋은데 지붕이 너무 번쩍거려서 좋지 않다고 코멘트까지 하는 판이다. 길옆에 집을 짓지 말라고? 마을 저 안쪽 한 구석에 놓인 집이라면 그가 무슨 모자를 쓰든 누가 상관했겠는가. 할 수없이 N은 너와를 올리기로 한다.

 

피죽이나 너와나 거기서 거기 같지만 한쪽은 가장 값싼 지붕재료요 한쪽은 가장 비싼 지붕재료라. 목재상 찾아다니며 또 인터넷 뒤지며 여러 곳 알아봐도 이젠 우리나라에서 참나무 일일이 도끼로 잘라내며 방수처리를 하는 그런 한가한 일을 하는 곳은 이미 거의 다 사라졌단다. 태백 어디에 또 울산 어디에 인간문화재들이 너와 지붕을 덮어주는 작업을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곳에 전화를 걸었더니 자그마치 평당 120만원이나 한단다. 이거 걸려도 한참이나 잘못 걸렸구나.

 

겨우 수입상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목재상을 찾아내 그곳을 통해 너와를 주문하는 N의 마음이 쓰리다. 이미 가졌던 자금 바닥나고 아끼고 아껴야할 퇴직금이 투입되기 시작한 상태에서 이건 너무 사치하는 것 아닌가. 이제부턴 집짓기의 사치가 그 이후 삶의 질과 직결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누가 얘기했던가. 포커게임에서는 나 그만 할래가 가능하지만, 고스톱에서의 운명은 끝나봐야 한다고. N은 이미 고스톱게임에 빠져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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