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개솔숲 이야기

c-14 Flintstones

뚝틀이 2009. 1. 18. 19:48

이제 비가와도 걱정이 없게 되었으니, 그 동안 구상해두었던 각종 방문과 창문의 구체적 설계에 들어갈 차례가 되었다. 어디에는 한옥분위기를 살려 살문을 달고, 어디에는 시원한 전망이 살아나도록 산뜻한 섀시를 달고...

모양설계라는 것은 비용설계이기도 하다. 낭만이 들어갈수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인부들만 아니라 납품업자들도 외지인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 창틀과 섀시 작업에 요구하는 액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나 높다. 약간 높은 것이 아니라 몇 배나. 너무 넘겨짚는 것은 아닐까 몰라도 담합 의혹이 짙다. 서울 쪽의 업자를 알아도 보지만, 소규모 공사에 출장 작업까지는 생각이 없단다. 결국 N이 굴복해야하는가.

 

전화위복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기본은 무엇인가. 산뜻함과 섬세함보다는 투박함. 그것이 이 집의 특징이어야 한다. 여기 주변에 어울리는 모양은 인간의 섬세함보다는 자연과의 어우러짐이다. 고인돌 가족 플린트스톤의 집까지는 아니더라도 투박하고 제멋대로 생긴 나무로 문틀이랑 창문틀을 만들자. 거기에 유리를 어떻게 끼울 것인가 하는 걱정은 나중일이다. C는 언제나 변함없이 진취적이고, Y의 얼굴엔 희색이 감돈다.

 

고인돌 가족에게는 그들 집이 가장 짓기 편한 집이었을 테지만, 모든 것이 표준화된 현대 사회에선 그런 제멋대로의 모양이 들어설 곳이 없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구할 수가 없다. 발로 뛰기. 이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 제재소 저 목재상에 알아보고 또 알아본다.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원목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대개 솔직하다는 것. 생김새도 그렇고, 크기도 그런 원목을 다루다보면 품성이 절로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어느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어도 마음이 편하다. 여러 곳 접촉하다 결론은 얻는다. 원목을 통째로 구입해, 문틀 용도로 중심에서 넓은 판재를 건져내고, 그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가로가 또는 세로가 잘려나간 나머지를 벽체를 입히는 용도로 함께 들여오는 방법, 그것이 최적이었다. 그런 용도로 견적을 얻어 보니 값이 몇 퍼센트가 아니라 역시 반값이니 배니 그런 차이가 난다. 그래 고인돌 가족이 와서 봐도 살고 싶어지도록 모든 문틀과 창틀에 원목 분위기를 살리는 거야.

 

독일 말에 Schnappsidee 소주아이디어라는 말이 있다. 소주 한잔 걸치고 떠들어댈 땐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다시 생각해보면 말도 되지 않는 그런 생각이라는 뜻이다. 그래? N은 C와 Y의 의견을 물으며 그들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핀다. 역시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둘의 얼굴엔 미소가 넘친다. 이제 스케일 자체가 바뀐다. 폭 6미터 높이 3미터 거실 벽 양쪽이 나무와 유리로 덮이게 되고, 나머지 방들도 온통 유리로 덮이게 될 것이다. 어쨌든 주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목재상을 새로 차리기나 한 것처럼 각종 모양과 길이의 나무더미가 곳곳에 쌓였고, 집 안은 갑자기 목공소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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