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돌아보기 괴로운 삶의 단계가 있다. 아예 기억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마음 한 구석에 없어지지 않아 응어리로 남아 끝없이 자신을 짓누르는 그런 시절. 더구나 그저 꿈에서나 가능할 것만 같았던 그 무엇인가가 오늘의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 그 시절 그런 기억에 대한 회한은 더욱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마련 아닌가. 그 아픔의 응어리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아니 그 아픔을 승화시켜 자연스런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때의 자신과 그때의 주변상황을 있는 그대로 재3자적 입장에서 응시하고 관찰하는 것이다.
작가 신경숙의 자기치유를 위한 회상록이다. 감수성 예민했던 그 나이 그 시절 한없는 무력감 속의 자기 자신, 유신말기 그가 또 그 또래 열 몇 살 소녀들이 일하던 스테레오 조립라인에서 횡행하던 비인간적 노동착취와 동물적 인권유린, 견디기 힘든 사회적 편견 속의 여공신분을 벗어나려 애쓰던 야간특설학교 급우들과 선생님, 오빠 둘과 외사촌 언니 이렇게 넷이 함께 나누어야했던 가리봉동 벌집의 그 좁디좁은 외딴방, 그리고 ‘그 이웃 희재’. 그 끔찍했던 절망과 상처의 시절로 작가 신경숙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간다. 마치 몽당연필을 손에 쥐어 잡고 글자 하나하나를 꼭꼭 누르며 써가듯, 정확한 순서를 따라, 조심스럽게.
그의 이야기 어느 곳에도 거북스러운 과장됨이나 화려함 또는 조급함이 전혀 없다. 극적인 반전도 없고 격한 감정의 표출도 없다. 아니 오히려 계산된 어눌함으로, 아픔에 반비례하는 냉정함으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내리누른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현재형,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과거형으로 서술해나가는 독특한 기법을 동원해가며.
하지만 몇 가지 허점도 있다. 마지막 부분에 가까워지며 현재형과 과거형이 뒤죽박죽 섞이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일지 몰라도, 팽팽하게 당겨졌던 용수철이 느슨해진 느낌을 준다. 그토록 많은 페이지에 반복되며 나오는 어렸을 적 남자친구 그 사람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고, 부모가 왜 그토록 그 집안을 싫어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고, 현재의 ‘그’에 대해서도 구름 같이 뿌연 글자들만 계속될 뿐이다. 있는 그대로를 들여다보자는 작가의 의도라면, 이 숨기고 싶은 프라이버시 내용은 차라리 생략하는 것이 좋을 뻔 했다. 그래도 이야기의 흐름에 전혀 지장이 없었으니.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형식상의 오류는 마지막 부분에 이어지는 일기형태의 서술부분이다. 정말 이 부분은 없앨 것 다 없애고, 작가 그 특유의 짜임새 있는 몇 줄로 대신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눈에 거슬리던 그 몇 가지 허점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소설다운 소설을 접한 느낌에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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