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미국 之話史

뚝틀이 2010. 2. 18. 02:45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CNN화면이나 할리우드영화에 나오는 것이 아닌, 또 미국에서 ‘세뇌’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듣는 것이 아닌, 미국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

 

제법 오래 된 어느 해 ‘70일간의 미국일주’를 할 기회가 있었다. 차에 짐 가득 실고 떠나기 전 다짐한 것은 딱 하나. ‘도시는 들르지 않는다.’

광활한 평원, 끝없는 사막, 또 산 그리고 바다. 그것이 미국이었다. 미국은 자연이었다. 그 후로도 틈을 내어 한 ‘지역’을 집중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만들곤 하였다. 말이 지역이지 이것도 웬만한 유럽나라 몇 개를 어우르는 크기였다. 어느덧 이젠 유럽 못지않게 샅샅이 밟았다할 정도가 되었어도, 마음은 계속 허전했다.

 

그러면 그렇지! 소개서만 읽고 몸만 더듬으며 사람을 알아보려 한 꼴이었다. 성장배경을 알면 도움이 되겠지! 시간여행을 해보기로 하였다. 너무 두꺼운 책은 싫었고, 초등학교 역사책을 손에 들었다.

‘아득히 먼 옛날 아시아 사람들이 시베리아로 올라가, 알라스카 거쳐, 미 대륙으로 들어가는 그림이 나오고, 그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이곳에, ‘새로’ 온 사람들이 황량한 들판이던 곳에 밭을 일구고, 사과나무를 심고, 들판에서 걷어낸 돌로 울타리 쌓아 들짐승 막고, 교회를 세우고..... ‘개척자’의 삶을 차분히 그려낸다. 계속 읽어가니, 영국군과 대항하여 독립을 얻어내고, 포장마차 타고 서부를 향하는 그림도 나오고, 게티스버그의 연설도 나오고, 나중에 동부유럽으로부터 가난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미국의 용광로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그림과 어울린 이야기에 푹 빠졌었지만, 그래도 역시 허전. ‘남의 집’ 이야기라 그런지 영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궁리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조선 땅과 미국 땅을 갈之자로 오가면서 엮어보는 ‘之話史’. 전에 중국역사를 배울 때 효과를 본 방법이다. 이제 시간여행을....

 

 

- 대륙의 발견 -

때는 성종임금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美대륙이 ‘발견’된 것이 1492년. 정확히 朝鮮건국(1392년) 100년 후이니, 이때 이야기가 시작될 수밖에.

훈척들의 ‘왕따’ 작전에 고립무원의 신세에 몰린 중전이 임금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고 폐서인 윤씨가 된다. 이런 뉴스는 순식간에 에스빠냐에도 전해지고 이사벨라 여왕은 콜럼버스에게 이 ‘사건’의 파장을 좀 자세히 알아볼 것을 명한다. 마치 곧 연산군의 등장으로 한바탕 회오리가 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이.

 

늘 바닷가에 앉아, 저 멀리 사라지는 배를 보면서 지구는 둥글다고 생각하던 이 청년은, 고되게 아프리카를 돌아가기 보다는 지름길로 인도에 가고 싶었고, 거기서 다시 조선으로 떠날 요량으로, 뱃머리를 서쪽으로 향한다. 아니나 다를까? 험한 바다에서 70일 동안이나 고생한 보람이 있는지, 드디어 저 앞에 ‘인도’가 나온다. 거기서 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금은보화까지 '얻고' 나니, 출발 때의 생각은 어느 새 다 잊고 만다. 금의환향한 콜럼버스를 맞는 이사벨라 여왕도 마찬가지. 이 무슨 횡재인가! 당시 그에겐 ‘통치자금’이 절실한 때라, 이 새로운 ‘자금줄’의 매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 새로운 ‘인도로 가는 길’에 매력을 느껴 찾아오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그 곳에서 들여오는 금의 1/5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받고, ‘사업증’만 남발한다. (한심한 권력자들 그저 돈 돈. 그때 조금만 더 멀리 보아 식민지 관리만 잘 했더라도, 오늘날 미국 땅에선 스페인 말만 쓰였을지도 모를 일인데.... )

 

- 청교도, 독립 -

스페인이 이 신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풍부한 물자로 거의 100년 동안 유럽의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동안, 이 땅에서는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을 거치며 끊임없이 사화가 계속되고, 간간히 있었던 개혁의 시도는 노회한 간신들의 농간으로 물거품이 되곤 한다. 지금 섬나라 일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도, 우리의 연약한 선조 임금 앞에선 서로 ‘더 예쁘게 보이기’ 다툼이 한창이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한 모습과는 달리 스페인은 ‘눈엣가시’ 섬나라 영국을 섬멸하려, 정벌 길에 나선다. 운명의 신은 섬나라만 편들기로 작정했던가? 골리앗이 다윗을 내려칠 것만 같았는데, 오히려 영국이 이 무적함대를 완전히 침몰시켜, 스페인은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이 소식이 어떻게 전해졌는지, 섬나라 왜놈들도 명나라 가겠다는 구실로, 조선건국 200주년이 되던 해 이 땅에 들어와 7년 동안이나 우리의 강산을 짓밟고 다닌다.

 

절대 권력은 부패를 낳는 법. 영국의 종교와 왕권이 유착되어 ‘부패그룹’이 판을 친다. 일단의 청교도들이 어찌해보려 애써보지만 오히려 박해만 자초해 살 수가 없게 된다. 이때 이들이 생각해 낸 것이 그 스페인을 살찌게 한 신대륙이었다. 이름이 그럴듯한 ‘식민지 경영’이란 ‘애국적 사업’ 신청서를 내미니 어렵지 않게 출항허가가 나온다. 이 ‘오월 꽃배’에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밀항자’도 함께 오르고, 망명길이 시작된다. 겨우 뭍에는 내렸지만 추위와 배고픔에 견디지 못해 반이나 쓰러지는 비극을 당하고, 나머지 50여명은 ‘따뜻한’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난다.

 

이 청교도들의 소식은 다시 유럽으로 전해지고, 이번에는 영국에서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네델란드 등 다른 나라로부터도 새 식구가 속속 도착하게 된다. 처음엔 서로 언어까지 다르니 갈등도 많았다. 하지만, 영조 임금의 탕평책으로 조선에 부흥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서로 감싸며 어려움을 이기기로 다짐한다.

 

우리끼리 잘해보자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라면 이 세상에 어디 어려움이 있겠는가? 물자와 세금을 걷어가는 영국의 욕심은 해가 갈수로 늘어만 가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결국 이 ‘공동의 적’ 영국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게 되고, 궤멸이라는 배수진을 친 이들 앞에 영국은 적수가 못된다. 같은 英자 돌림이라서 일까? 영국의 패퇴와 함께 영조 임금께서 떠나시고, 정조 임금의 즉위식과 함께 조지 워싱턴의 독립선포식이 있게 된다. 1776년. ‘자유미국’의 서장이 열리는 순간이다.

 

- 안으로, 이어서 밖으로 -

새로운 자유. 자유는 질서의 공백을 의미하기도 한다. 재물의 제1조는 땅. 황소개구리처럼 게걸스럽게, 남쪽의 땅들을 먹어들어 가는 이들에겐 인디언도 안보이고, 동족도 눈에 없다. 박해 받던 올챙이 시절을 잊은 이들은,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노예까지 본격적으로 수입한다. 목화농장과 담배농장은 속속 노예로 채워지고, 플랜테이션의 규모는 옷장사 담배장사로 벌어들이는 만큼 늘어나곤 한다. ‘비어있는’ 텍사스에까지 소 떼를 몰고 들어갔다가, 땅 주인 멕시코와 몇 차례의 전쟁까지 치른 후, 결국 ‘매입’하고야 만다.

 

땅은 돈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던가? 이 ‘매입행진’은 이후에도 계속되어, 캘리포니아도 뉴멕시코도 결국 ‘매입형 접수’의 희생물로 떨어진다.

‘대박’이란 것이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단돈 1500만불에 매입한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바로 매입한 그해, 대규모 금광이 발견된다.(그렇게 우연일 리가 있겠나? 영화 ‘조로’에 보면 다른 스토리가 나온다.)

남으로, 남으로 향하던 발길이 이제는 서부로 방향을 틀었고, 엘도라도를 향한 꿈은 모두를 들뜨게 한다.(가끔 49라는 상표가 가끔 눈에 띄는데, 이는 1849년의 골드러시 때의 모험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이 골드러시에 꼭 백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등 일련의 혼란 속에서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잔잔한’ 바다를 건너온 중국인들도, 쿨리(막일꾼)라도 좋다면서 계속 몰려들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란 냉엄한 것이어서 이들은 ‘준 노예’ 신세로 전락해 철도공사에 투입된다. (그 나라가 아름답다고 美國이라 부르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 귀에는 아메리카의 ‘메’만 크게 들렸고, 그 발음을 따서 美(메이)라고 부른 것이다. 英國도 마찬가지로, 잉글랜드의 ‘잉’자만 들리니 英(잉)이라 부른 것이고.)

 

- 남북전쟁 -

불평등은 갈등을 부른다. 갈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전쟁으로 이어지고.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북부 ‘나라’들은 ‘수입관세’를 높이며 남부를 견제하려 하고, 남부 ‘나라’들은 ‘자유무역’을 주창하며 막강한 재력으로 ‘양키’들을 몰아세운다.

 

날이 갈수록 갈등이 증폭되던 어느 날, 북부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한 마디가 조선반도로부터 전해진다. 동학을 창시하신 최제우 선생의 人乃天! 모든 이의 평등을 주장하는 이 말씀에 북부인들은 마음을 정한다. 뿌리를 뽑자. 편안하게 노예나 부리며 끝없는 욕심에 사로잡힌 저들을 꺾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저들의 노예를 해방시키는 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기도 ‘또 하나의 유럽’이 될지도 모른다는 도덕적 위기감 폭넓게 퍼지면서, 전쟁이 선포되었고, 그 수염 덥수룩한 링컨이 ‘순수함’을 무기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링컨은 ‘다 합쳐 12달도 안 되는 학교교육’ 밖에 받지 못했으며, 또 그의 전기에 보면, 엄마가 “I knowed him...” 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신사임당을 어머니로 둔 것도 아닌 이 링컨에게 어떻게 그런 지도자의 능력이 생겼을까? 그 비밀은 바로 사전이었다. 가난한 그가 가진 책이라곤 사전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는 매일 거기에서 ‘문맥’을 발견하려 애썼던 것이다. 서점에 Lincoln‘s Dictionary라고 나오는 사전들은 이런 배경으로 예문을 풍부히 실었다는 그런 뜻이다. 우리가 ‘단편적’ 지식에 만족치 말고, 그들을 ‘꿰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하는 사건이다.)

 

이 링컨은, 고종황제의 즉위식과 때를 맞추어,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평등..... 의 人乃天 사상을 담은 게티스버그의 연설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후, 5년간 계속되었던 남북전쟁은 숱한 상처를 남기고 막을 내리며, 그 남부의 영화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된다.

 

- 산업국가 미국 -

이제, ‘국가’도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 철도도 제법 깔렸으니, 중북부지방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한다. 여름 기후는 변화무쌍하고, 겨울은 너무 혹독하지만, 빨간 머리의 앤과 그의 친구인 ‘포드’ 소년의 ‘농촌마을’ 디트로이트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검은 연기를 무자비하게 내뿜는 ‘증기 자동차’보다는 마차가 더 매력적인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앤에게는 우리의 이화학당이 설립되었단 소식이 전해지고, 소년에게는 독일의 오토가 가솔린으로도 차를 가게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 다음 해에는 다임러와 벤츠가 승용차를 만들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포드는 자기도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해는커녕 말리는 사람뿐이다. '신분과시용' 자동차를 살만한 경제력이 있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가 그 이유였는데, 포드는 바로 그 이유를 역으로 이해하면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컨베이어 벨트 식 생산라인. 이것이 그의 아이디어였고, ‘단일모델’. 이것이 전략이었다. 동네 아가씨들에게 손으로 수놓은 아기자기한 옷을 파는 대신에, 재봉틀 10대 놓고, 주머니 박는 사람 따로, 허리띠 박는 사람 따로 해, 옷을 뿌리는 식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T-자동차다. 그의 참모 테일러는 종업원들을 관찰하며 time and motion study를 수행하고, 각 작업자와 팀의 job, task 등을 정리해 나가면서, 생산의 전 과정을 ‘최적화’ 시키는 연구를 계속한다. 이 체계적인 생산/인사/조직관리 시스템은 일개 회사의 ‘일’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학문의 탄생’이었다.

 

 

 

이 포드의 개념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따라, 국민의 노동력이 국가의 힘이고, 그들이 생산하는 물자가 국가의 부라고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 인구가 ‘적은’ 미국은 아직 유럽에 경쟁할 상대가 못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관점에서의 미국의 핸디캡이 일거에 극복된 것이다.

채찍질이 아닌, 과학적 접근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관점에 불을 붙인 것이 테일러이고, 이 컨베이어 벨트의 개념은 미국의 전 제조업으로 급속히 퍼져나간다.

 

- 세계전쟁 I -

산업혁명이후 계속되어온 기술의 발전으로 나라마다 과잉생산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는 원료공급선의 확보뿐 아니라 소비시장 쟁탈에 국가가 나선다는 제국주의란 괴물을 만들어 내게 된다. 물론 우리가 일본의 손아귀에서 35년간 고생하게된 것도, 이 상황 때문이었다. 우리의 비극시작 4년째.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또 이탈리아가 축을 이루고 사라예보의 총성을 신호로 일으킨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전 유럽이 5년 동안 초토화되는 비극을 맞는다. (전쟁내용까지 여기서 다룰 수야 없지.) 그러나 우리 유관순 열사의 만세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독일이 놀라 손들고 항복하며, 전쟁이 끝나게 된다.

 

멀리 떨어져 민족자결주의를 외친 것 밖에 없는 미국에게는 이 전쟁이 횡재를 안겨준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 변혁기에는 소수민족이 수난을 당할 수밖에 없고, 유럽 ‘최대의’ 소수민족인 유대인들의 엑소더스는 끊임없이 미국으로 이어진다. 단순한 노동력의 흡수란 차원을 훨씬 뛰어넘어 금융전문가, 과학자, 예술가를 대량으로 끌어안게 된 것이다.

 

- 대공황 -

이제 전쟁은 끝났다. 생산의 효율성이 높아진 만큼 제품은 더욱 시원스레 쏟아져 나왔고, 초토화된 유럽에선 이 물건들을 잘도 사갔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로부터 나오는 전쟁배상금이 있었다. ‘다시 전쟁 일으킬 생각일랑 꿈에도 못하게 하자’는 복수 심리까지 곁들여져 나라마다 무자비하게 뜯어냈고, 그 돈의 대부분은 결국 미국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 모든 것의 혜택은 극히 일부분에만 돌아갔고, 대부분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독점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부의 편재. 사회적 불안. 이 상황은 시한폭탄에 다름없었다. 금융 불안의 조짐이 보이는데도, 미국은 체통이 걸린 금본위제를 포기하지도 못하고, 통화정책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없어 머뭇거리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광주에서 학생운동이 시작되었고, 바로 그때, 마치 금문교가 바람에 무너지듯, ‘하루아침’에 전 세계의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는 경제 대 공황이 일어난다.

 

이 공황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루즈벨트는 당시 새로운 케인즈의 경제이론을 과감하게 수용해 뉴딜정책을 내어놓고, 유럽보다 한발 앞서, 미국 경제를 회복기로 돌려놓는다.

 

우리도 최근에 이 비슷한 극심한 혼란을 경험했듯이, 지난 다음 돌이켜보는 혼란이란 기득권층의 파트너 교체과정일 뿐이다. 이 공황 후의 미국은 정치/군사/무역부분에서는 와스피(white, anglo-saxson, protestant)에 의해, 금융계는 유대인에 의해 완전히 점령된다.

이 난리 중에 가장 호되게 서리를 맞은 것은 당연히 금융업이다. 전문가의 ‘노련한 경험’에만 의지했던 금융기관들은 이제 전혀 다른 차원의 리스크관리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이에는 투명한 회계 시스템과 철저한 재무/기업분석이 필수적이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인사관리이론에도 인간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미국경영학의 양대 축은 확고한 틀을 갖추게 된다.

 

- 세계전쟁 II -

전쟁 후 루르 공업지대까지 프랑스에 빼앗긴 독일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다. 일해 만드는 것마다 배상금으로 쓰였고, 그것도 모자라니, 돈을 마구 찍어내었다. 그 결과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속의 실업자 사태였는데, 이제 공황까지 들이닥쳤다. 모두가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히틀러는 실업자 구제의 명목아래 전국에 그물망 같은 아우토반을 깔아놓고, 암암리에 무기를 생산하며 전쟁을 준비한다. 결국 독일은 또다시 이탈리아와 손을 잡고 막강한 공군력과 기계화 부대를 앞세워 거칠 것 없이 전 유럽대륙을 손에 넣는 ‘번개작전’을 벌인다. (아프리카까지 진격한 롬멜의 전차부대를 격파하는 몽고메리의 활약, 아이젠하워 장군이 이끄는 노르만디 상륙작전 등등의 전투이야기 역시 여기에서 더 할 수는 없는 일)

 

내면적으로는 이 전쟁은 독일과 유대인의 전쟁이었다. 600만명이란 목숨이 사라져가는 홀로코스트는 제1차 대전 후 승전국들의 ‘무자비한’ 배상요구 뒤에는 유대인 들이 있었다는 생각에서 나온 복수극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독일 쪽 과학자에도 유대인이 많았다는 것이다. (브라운의 V-2 미사일, 오토 한의 핵 연구, 마이트너의 보어 접선등 첩보영화를 능가하는 스토리는 끝이 없을 정도다.) (만일 히틀러가 유대인을 감싸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일단 전쟁을 승리로 끝낸 후, 그 다음에 비로소 홀로코스트를 시작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일본 쪽은 이야기는 생략. 단지 일본과의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는 암호해독능력이었다는 전자공학과 수학의 기여도를 강조하는 말만 붙이면서.

 

 

 

- 전쟁 후 (겉) -

유럽은 경제 정치 군사 어느 면에서도 거의 회복 불능상태에 빠지지만, 미국의 본토는 온실 속처럼 보호되었고, 자체의 경영기법을 한껏 발전시키면서, 그 전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물자를 공급하며 부에 부를 쌓았다. 거기에 추가하여, 더 이상 유럽에 머무를 수 없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미국을 동경하는 다른 두뇌들도 다 끌어 모을 수 있었으니, 경제 군사 문화 정치 어느 한 분야에서도 핸디캡이라곤 없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미국 앞에 갑자기 거인이 나타난다. 바로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1905년과 1917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을 단지 변방의 작은 일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전쟁이 끝나면서 지구의 땅 면적의 1/7을 차지하는 공룡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뿐인가? 순식간에 동구권 일대를 깨끗이 위성국가로 흡수하고, 더구나 중국까지도 공산당의 지배를 받고, 그야말로 가장 나쁜 쪽으로만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경제규모 면에서는 그다지 우려할 만한 존재는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사실 한반도를 두 조각으로 ‘나누어 가질’ 때만 해도 큰 우려는 없었고, 한국전쟁도 ‘한때 어려웠지만’,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 사건이 미국을 강타한다. 한국에서의 총성이 멎고 겨우 4년 밖에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스푸트니크란 인공위성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첫째, 미국이 그렇게 자신 있어 하던 정보 분석 능력의 한계가 드러나고, 둘째, 그들의 과학 수학 능력이 그 정도로 앞서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셋째, 인공위성이란 것은 미사일로도 격추시킬 수 없게 높이 떠 있는 것이니 이제는 미국 본토도 전혀 안전지대가 아님이 입증된 것이다.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순간이다. 이제 소련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언제든지 핵무기로 미국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 위협으로 떠오른 것이다.

 

- 전쟁 후 (속) -

역설적으로 보면, 이 소련이야 말로 미국에 구세주 역할을 했다. 자칫 미국에 말썽이 될 수도 있는 유럽의 군사력을 나토라는 조직 안에 묶어 둘 수 있었고, 핵우산을 필요로 하는 아시아 각국을 손쉽게 거둬드릴 수 있게 되었다. 꼭 정치 군사 분야만이 아니다.

 

연구와 개발이란 관점에선 전쟁의 시기는 암흑기가 아니고 오히려 전성기가 될 수도 있다. 전쟁 때에는 국가의 명운이 달린 만큼 아낌없이 연구와 기술개발에 돈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꼭 전쟁을 염두에 두고 일어난 일들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반도체 이론은 경제공황 시기에 정립되었고, 통신의 기본적 틀도 이때 완성되었다. 이 반도체와 통신으로 대표되는 전자공학이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기에, 전쟁 후의 미국은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르게 된다.(지금 미국의 어려움도 어떤 면에선 소련이란 경쟁자가 사라진 후 나태해진 결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제 1,2차전 보다 더 상상하기에도 끔찍한 전쟁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어 보이는 냉전체제가 된 것이다. 실제로 그 핵미사일들이 미국의 바로 코 앞 쿠바에 설치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이고, 이때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의 전쟁 분위기였다. 연구는 국력이었고, 이 연구를 게을리 하는 순간 미국은 망하는 것이었다.

 

이 위기의 순간에 큰 버팀목이 있었으니, 바로 자기 스스로 걸어 들어온 유대인들과 중국인들이었다. 각 연구소와 대학에 포진해 있는 유대인들은 선천적으로 수학적 두뇌를 갖고 있고, 이들은 큰 재산이었다.(사실 소련의 핵연구가의 대부분 역시 소련이 ‘모셔간’ 유대인들이었다.) 철도공사에 동원되었던 중국인들의 二世들이 어느새 born in america의 미국인이 되어있는 것이다.

 

금상첨화라고나 할까? 이 중국인들이 중국 본토와 대만으로부터 가족을 끌어들이면서, 두뇌의 공급은 계속되었다. 이들은 안정된 생활만 보장된다면 절대로 주인(와스피)를 물지 않는 충견과 같은 신뢰성을 갖추었기에, ‘적절한’ 대우만으로도 이공계의 인력부족을 우려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한 대학사회의 분위기는 대만, 인도, 한국의 두뇌를 (일본은 한때 적국이었던 입장 때문에...) 싹쓸이 하다시피 하였고, 미국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게 했다.

 

이 역시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소련이란 냉혹한 경쟁자가 없었다면 미국에 있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의 위상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 노예였던 흑인들이 올림픽 메달을 긁어 오고, ‘노예’였던 중국인들이 ‘두뇌올림픽’의 ‘메달’을 긁어오게 된 것이다. (물론 너무 소수민족의 역할을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 백인으로만 구성된 사회였더라면 또 다른 모양이 나왔을 것이다.)

 

- 미국 산업의 새 모습 -

이제 이 새로운 미국의 ‘전체모습’이 개개회사의 변신을 일으키는 세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우선 IBM. 이 회사는 이름 그대로 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 회사다. 이름이 그럴듯해서 그렇지, 그저 타자기 만드는 회사였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연구개발의 여력도 생기는 법. 타자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인 교정 작업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메모리 타자기’를 만들려다 컴퓨터를 만들게 된다.

 

또 하나의 예 TI. 이 회사는 이름 그대로 텍사스에서 석유탐사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만드는 회사였다. 진공관으로 된 육중한 장비들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늪에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였는데, ‘자그마한’ 반도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땠을까? 이 반도체로 논리회로를 만들려다 생각한 것이 ‘집적회로’였고, 이 IC라는 기술자체가 바로 TI의 특허가 된다.

 

다음은 Gore 社. 고어텍스로 잘 알려진 이 회사의 예를 드는 것은 위의 두 회사처럼 제품관점에서가 아닌 경영적 관점에서이다. 이 회사는 ‘비경영의 경영체제’라는 ‘말도 안되는 조직’으로 운영된다. ‘조직원은 자신의 위치를 최고의 수준에 이르기 까지 스스로 찾아야한다’는 것이 이 회사 사장의 지론이다. 보스도 없이 서포터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이 회사에서는 직공일로 시작했던 사람이 최고의 마케팅 담당자가 되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전세계에 28개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IBM, TI, 고아의 과거가 어땠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들이 도전의식으로 오늘의 회사가 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다. 미국의 회사는 바로 이런 식으로 앞서가면서 커 간다. ‘시시한’ 기술과 과거의 방법에 연연하다가는 살아남지 못한다.

 

보통 미국의 과학기술이 최강이라고 부러워하지만, 미국의 최대 발명품은 경영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미국은 이민국가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과 인종들이 모인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좋은 결과’만이 유효한 언어다. 따라서 인간도 인격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산요소일 뿐이다. 그 좋은 career development 단어도 깊은 뜻은 결국 그 사람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생산/재무/인사/조직 관리 모두 그렇고 마케팅/경영전략 모두 그렇다. 이 경영학에는 교과서가 있을 수없다. 바둑을 정석대로 둔다고 이길 수 없듯이, 스스로 환경에 맞추어 최선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만이 살 길이다. IBM이 그랬고, TI가 그랬고, 또 고아가 그랬다.

 

앞서가는 기술의 원동력은 대학의 고급두뇌들이다. 바로 이점에서 미국은 독보적 존재이다. ‘이민국가’ 미국에선 누구나 ‘주인’이니, 전 세계의 두뇌들은 꾸준히 이곳으로 모여든다. (와스피는 이제 스포일 될대로 스포일 되어 의사나 변호사 또는 돈 만지는 사업을 하려고 하지, ‘돈도 되지 못하는’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MIT를 두르는 route 128, 스탠포드와 버클리를 어우르는 실리콘 밸리 등을 산업중심으로 만들고, 이 새로운 기술회사에서 새로운 경영기법도 생겨난다.

 

그러나 이것이 동시의 미국의 딜레마다. 첨단 산업에서의 ‘외국인’ 비중은 날로 늘어나고, 재래식 산업은 ‘외국’의 경쟁에 밀려 쓰러지면서, 산업 空洞化현상이 계속되고 있으니, ‘일반 미국인’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서비스업종으로 내 몰리고 있으며, 현재 그 비중은 3/4을 넘는다.

 

- 미국의 부와 그늘 -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미국의 富는 어디서 나오는가?

미국의 부는 물론 각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는 크고 작은 회사들에서 나온다. 앞서 이야기대로 이들이 미국의 진정한 힘이다.(꼭 Intel이나 IBM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코카콜라, 맥도널드, FedEx, 시티은행등 서비스업이라면 역시 미국이다.)

정치적 비중도 함께 고려하여 미국의 부를 대표하는 업종을 꼽는다면 단연 세계의 식량창고 역할을 하는 농업과 목축업이다. 내 여행 때 나를 가장 짓누르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세계인의 영혼을 빼앗고, 돈도 빼앗아가는 영화산업이고, 또 세계의 두뇌를 끌어들여 미국의 힘을 키우는 교육산업이다. 세계의 어느 나라가 이 분야에서 도전장을 내밀 것인가? 당연히 정치/군사력을 등에 업은 무기산업도 중요한 부분이다. 또 전 세계 하늘을 누비는 항공 산업이 있다.(그러나 여객기 쪽에선 이미 에어버스에게 추월을 당한 상태이다.)

 

이런 예가 ‘부끄러울' 때, 사람들은 실리콘 밸리를 미국의 부의 원천으로 꼽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두뇌산업이라는 IT는 인도와 대만 사람들이 이끌어 가고 있고, IC는 인도와 중국인들이 끌어가고 있다. (한국도 Corea라고 쓴다면 아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 역시 일반 미국인과는 거리가 있다.

 

富에 대한 이야기를 더 진행시킬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미국이 세계 최대의 소비국이고, 중국이 세계 최대의 생산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생활용품과 가전제품이 미국산이 아닌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산업자체가 군데군데 비어있다.

아마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이 규모의 쌍둥이 적자가 이렇게 오래 계속되었다면, 그 나라는 이미 오래 전에 파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달러를 계속 찍어내도 된다. 우리가 그런다면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은 고스란히 우리 몫이지만, 미국은 달러를 보유한 모든 나라가 그 압력을 분담하니 그 압력이 훨씬 덜하다.(세뇨리지 Seigniorage 효과)

 

그렇다면 미국의 2억이라는 인구는 무엇으로 먹고 사는가?

바로 돈이다. 전 세계의 돈은 유대인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이고 있고, 자본주의에선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돈으로의 변환과정을 거치는 것이니, 금융업이란 음식을 먹는 대신에 피를 먹는 것과 같다.(일하지 않고 돈을 돌리며 이자 받고 수수료 떼는 사채업자나, 다른 이의 회사에 자본 참여해 배당을 받거나 차익을 노리는 증권투자로 돈을 버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좀 이해가 쉬울 것이다.)

또, 지금같이 전쟁의 기운이 사방에 감돌고 있을 때, 돈은 그 속성상 가장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미국으로 몰리게 된다.(이로 인한 위력을 이해하려면, 자기돈 10%만 갖고 영업하는 우리 은행들의 막강한 힘을 생각하라.)

또 중국과 일본이 아무리 달러를 벌어들여 봐야 그것을 보관창고에 넣지 않는다면 결국 미국에 재투자해야한다.

 

결국 지금 미국이 생산 활동에 의해 벌어들이는 이외의 ‘생활비’는,

돈으로 벌어온 돈이거나, 후손들로부터 빌린 돈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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