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한국민으로서의 자부심 중 하나가 우리역사의 안정성이었다. 중국은 漢-5호16국-수-당-송-원-명-淸으로, 일본은 야마토-나라-헤이안-가마쿠라-무로마치-에도-메이지로 외울 것도 많은데, 우리는 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 이 얼마나 간단하고 굵직한가. 그런데 요즘 자꾸 묻게 된다. 이 굵고 간단함이 정말 우리민족의 우월성을 의미할까? 불행히도 답은 그 반대라는 느낌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둘만 경험한 북쪽사람들과 우리를 비교해보더라도 대충 답이 떠오르지 않는가.
생각을 한 번 틀어보자. 중국이 부러운가? 부럽고말고. 그들의 사상체계는 춘추전국시대에, 통일제국의 틀은 진나라 때 갖춰졌다. 고주몽 박혁거세 그 훨씬 이전에 말이다. 그 혼란하고 잔인했던 시기를 거치며 갖춘 강국의 면모를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는 그 자부심이 어찌 부럽지 않겠나. 중국이 초라하다고? 자기중심적 오만이 누적되어 당한 대가를 치루는 근세의 한 짧은 순간일 뿐이었고, 이제 급격히 회복되는 중이다. 그럼 일본은? 존경스러운 존재는 아니지만 솔직히 역시 부럽다. 우물 안 개구리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던 그들이, 세밀함과 철저함이란 내공을 쌓아오다가, 결정적 순간에, 청나라 꼴 당하지 않으려, 잽싸게 서구문물을 빨아들이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 않았는가. 그 순발력과 그들이 누린 행운이 부러웠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문화에 압도 되어 흉내 내기에 바빴고, 그 큰 덩치에 지레 겁먹고 알아서 기었다. 그렇게 입 헤 벌리고 사대주의에 젖어 있다가, 황태지에 터지고, 풍신수길에 짓밟히고, 이등박문에 능욕 당했다.
이제 직설적으로 물어보자. 우리는 멍청한 민족인가? 거북선, 금속활자, 한글 이야기로 그렇지 않다거나, 수출 얼마 메달 몇 개 들먹이며 이젠 그때와 다르다 이야기 말자. 그런 불행한 일들을 예고도 없이 당했던 것이 아니다. 설마 그런 일이 하며 방심하고 있던 사이에 때가 너무 늦어졌던 것일 뿐이다.
이 바쁜 세상에, 웬 지나간 일 타령이냐고? 지난 일이긴! 천만에! ‘우리’란 개념은 무슨 픽이니 무슨 컵에나 그 흔적이 남았을 뿐, 사는 곳 가진 것 거기에다 출신학교 지역 그런 것까지 얽혀 서로가 서로에게 남인 지금을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도 않는 우리의 모습. 가진 것이 남보다 많다는 것 이외엔 자랑할 것 아무 것도 없는 족속들이, 현대판 과거에 뽑힌 자들이, 죄의식 하나 없이, 보수니 진보니 단어희롱 일삼으며 설쳐대는 저 모습. 역사의 한 장면이 지금 재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 불행했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일이 없으려면,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몽고족에 짓밟힌 송나라 꼴 만주족조차 반겨 맞아들인 명나라 백성 꼴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멍청했었는지 직시해야 한다. 아무리 변화가 어지럽게 일어나더라도 자기성찰을 잊지 말아야한다.
어떻게 했었어야 옳았나. 자신을 알았어야 했다. 자신을 키우고 지켰어야 했다.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 서문을 달리 쓰셨어야 했다. 사랑스런 백성이 자기생각을 우리말 그대로로 나타낼 수 있도록 이렇게 우리글을 만들었노라고. 그리고선 곧바로 한글로 과거시험을 보기 시작했어야했다. 공자맹자나 읊어대는 ‘마음의 중심이 딴 나라에 가 있는’ 서생들이 아니라, 민족의 얼과 자긍심을 가진 인재들을 키우고 뽑았어야 했다. 그렇다면 500년 세월동안 진정한 우리시각에서 중국과 일본을 대할 수 있었고, 외세에 대한 우리의 대응도 달랐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을 제대로 키워야 한다. 생각다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입시에도 입사시험에도 국어가 우선이고 민족자긍심이 모든 것에 우선해야한다. 미국이 곧 세계라 믿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환상에서 벗어나야한다. 세상은 넓고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편식이 몸을 허약하게 하듯, 한쪽으로만 치우친 문화섭취는 골병을 불러온다. 지금이라도 백가쟁명의 시대를 열어야한다. 기득권층의 오만방자함을 깨야 한다. 일본이 서구의 강점으로 제일 먼저 지목하고 배운 것은 바로 법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명확히 구별되는 나라. 그 나라가 강국이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우리민족은 멍청한가? 아직도 그 영어라는 알량한 도구가 실력과 철학이라는 기본에 우선하고, 의사 변호사라는 직업이 무슨 계급인 양 인식되고, 지역과 학벌로 편을 가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되고, 죄의식 없이 닥치는 대로 챙기기에 바빴던 사람들이 나라를 위한답시고 설칠 수 있는 사회라면, 이건 無腦族의 천국이요, 생각 있는 사람의 지옥이다.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냐 하는 뒷짐만 지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무슨 호란 무슨 왜란은 역사책에서 들어본 적 있었던 그런 것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면, 불행한 이야기지만, 우리민족은 다시 그 멍청함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에 틀림없다.
'뚝틀이의 생각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공계 살리기 그것만이 길이다. (0) | 2010.04.04 |
---|---|
영어를 잊어야 나라가 산다. (0) | 2010.04.03 |
Plagiarism? 오해와 이해는 종이 한 장 차이? (0) | 2010.03.09 |
인간스러운 전자 (0) | 2010.03.08 |
부끄럽다뇨. (0) | 2010.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