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인간스러운 전자

뚝틀이 2010. 3. 8. 23:51

엉뚱한 생각. 그건 작은새 속성이다. 그중 하나. 예를 들어 전자와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일까?

사람들은 이야기 한다. 전자는 따로따로 놀기를 좋아한다고. 전자 쪽 공돌이 빗대어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전자에게 물어보고, 그의 말에 귀 기울여본다.

 

우리는 중심을 잊지 않는다. 핵이라 부르는 곳, 그곳을 중심으로 우리는 움직인다. 그 주위를 돌며 제 위치를 지킨다.

그렇다고 가만히 서있다는 그런 말이 아니다. 우리가 있을 곳을 잊지 않는다 그 말이다.

갑자기 중심을 향해 뛰어드는 그런 무모함 우리는 모르고, 또 핵 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도 않는다.

제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아무 곳에나 있지 않고 반드시 우리에게 허용된 그런 자리만 차지한다.

어떤 때는 한 자리에 둘이 들어가기도 하는 데, 그런 때라도 똑 같은 둘이 들어가질 않는다.

팽이가 돌 듯 도는 우리는 그 도는 방향이 각기 다른 그런 경우에만 그 자리를 같이한다. 하나는 왼쪽으로, 또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동성애니, 삼각관계니 하는 그런 것 우린 모른다.

 

물론 누구나 그렇듯 우리도 가끔 바깥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파수를 넘어선 빛이 불러내면 우리는 쏜살같이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간다.

어떤 때는 집 전체가 너무 뜨거워져 식구들이 좌불안석 되는데 그럴 때도 자리 박차고 뛰쳐나가는 녀석들 있을 수밖에. 

자유를 얻은 우리가 기분이나 한번 내보려 꽈당 부딪치면, 이번엔 그 곳에 있던 녀석 자기가 지니고 있던 빛 내뿜으며 도망을 간다.

사람들은 특히 우리가 유리판에 발라 놓은 형광 막 때리며 일으키는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엄마 아빤 안방에서 넋 잃고 그 유리만 쳐다보고, 아이들도 자기 방에 틀어박혀 이 그림 저 그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우린 원래 그렇다. 밖으로 나가서만 불꽃놀이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우리 동네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파도와 같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우리를 모래알 같다고 하고......

프랑스 사람인가 하나 나서서 파도나 모래알이나 사실은 하나인데 이렇게 보면 이것이고 저렇게 보면 저것일 뿐이라 얘기 해줘도,

그게 도대체 뭔소리여 사람들이 더 어리둥절해 하는 것이 우리에겐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 같다. 따뜻한 봄날 풀밭에 누워 ‘따가운 햇살’을 즐긴다는데, 바로 이 따가움과 햇살을 함께 묶어 생각하는 Corean들이야말로 우리의 실체를 제대로 간파한 사람들이다. 사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이 좋다. 우리가 뿜어내는 이 불꽃놀이에 맞춰 사람들이 대~한민국 외치고 노래하고 춤출 때 그땐 정말 날아갈 기분이다.

 

‘사랑과 영혼’그 영화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벽을 스며들며 넘나드는 그 주인공의 사랑이 너무 아름다워서.

사실 그건 우릴 흉내 낸 것인데. 플래쉬 메모리. 이게 뭐 빠르다고 플래쉬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우린 그 속에서 이 변신게임에 눈코 뜰 새 없어졌다. 사람들은 변신이라 생각하지만 우린 언제나 파도인 동시에 모래알이다.

 

우리는 포효하기도 한다. 당연한 일 아닌가. 우리 마당에 견디기 힘들 정도의 기운이 감돌게 되면,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불러내고, 그 친구가 또 다른 친구를 불러내면서, 순식간에 온 동네가 엄마 손을 뿌리치고 나온 아이들로 가득 차고, 그들이 엄청난 힘으로 몰려나가고. 사람들은 이 와!와!하며 눈사태를 일으키는 우리가 신기한 모양이다. 집집마다 벽마다 시커멓고 묵직한 것 몇 개씩 꽂혀있다.

 

어떤가. 반도체로 가득한 한반도 사람들이여. 자신이 있을 곳을 알며, 때로는 빛으로 때로는 모래알로 자유자재 변신하며, 가로막는 높은 장벽 사뿐히 스며지나가고, 또 분노해 포효하기도 하지만, 어느새 다시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올 줄 아는 우리 전자가. 정말 인간스러운 친구라 생각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