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읽었다고나할까. 독일 법대의 교수이기도 한 작가 Bernhard Schlink는 선과 악의 ‘실체’를 나치독일이라는 시대적 특수상황과 그리스신화 오디세이를 섞어가며 ‘우유부단한’ 주인공의 입장에서 차분히 ‘해부’해나간다.
상황설정부터가 독특하다. 나치독일이라는 시대적 운명에 무력하게 휩쓸려 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존재들이라는 그런 ‘통속적’ 상황설정이 아니라, 나치의 통치와 그들이 일으킨 전쟁이 역사적 필연이요 독일인의 사명이라 현란한 필체로 앞장서 선동하던 ‘원주인공’이 패전 후 신분을 숨기고 미국으로 스며들어 이번에는 유명대학의 정치학교수로 변신해 자신의 생존이론을 더 정교하게 다듬어나가고 있는데, 작가는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대신, ‘나’라는 주인공이 우연히 ‘운명적으로’ 그 사람의 발자취를 쫓아가게 된다는 그런 스토리라인으로 이야기를 꾸몄다.
책 읽는 내내 작가라는 직업이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각, 그 생각의 흐름을 적당한 스토리에 얹어, 차분하게 그것도 아주 차분하게 풀어 설명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 직업이. 이야기 중간 중간에 나오는 분위기 묘사로서 앞으로의 진행이 어떻게 될 것 같다는 강한 암시를 받고, 또 실제로도 이야기가 그렇게 풀려나가지만, 소설이라는 것이 그 시납시스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풀어가는 문장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는 입장에 집어넣는 그 특권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 수많은 독일인들의 생각흐름을 이 책에서 확인하는 것 같아 어느 정도 거부감에 시달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교묘한 상황이론. 유대인들에게 ‘착취’ 당했던 독일민족이 견딜 수 없는 궁지에 몰려 할 수 없이 외세에 항거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 합리화이론이 이 책에서는 ‘주인공’이 ‘원주인공’의 족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글들을 인용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결국 작가가 자기 책에 쓴 글들은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되도록 하고 싶어 쓰는 것 아니던가. 그래도, 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법 도덕 정의 인륜 그런 ‘세속적 가치관’과는 상관없이 작가가 ‘창조한 세계 속’에서의 여행일진대 트집거리를 잡아내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 신성불가침의 문학적 작품의 특권에 말이다.
단순히 책 그 자체를 놓고 볼 때, 최근 읽은 책들의 중언부언 횡설수설에 질려서 그런지, 이 책의 빈틈없이 정제된 문체 또 문장 하나하나에 심어진 생각할 거리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하는 ‘훌륭한’ 책이라고 밖에 달리 평할 수가 없다. 또 하나 덧붙일 것은 깔끔한 번역. 번역자 박종대의 이름을 기억해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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