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맨날 풀이야.

뚝틀이 2011. 10. 10. 20:09

아침부터 기분이 울적하다. 이럴 땐 일이 최고. 일? 일이야 얼마든지 있지. 전원의 낭만이라는 것은 바로 일의 동의어 아니던가. 풀 뽑기. 비오는 날 기다려봤지만, 당분간 비 소식은 없다. 마른 땅의 풀. 오늘은 소박하게 목표를 잡는다. 마당. 마당도 다가 아니라 현관에 앉았을 때 눈에 보이는 곳, 오늘은 우선 그 정도만. 풀독 오르지 않게 긴 팔 옷 과 장화 챙기고 작업 장갑, 그리고 물론 호미. 내 제일 싫어하는 작업이다. 호미 작업. 하지만, 오늘은 울적해서 하는 일 아닌가. 그럴 때는 제일 싫은 일을 미친 듯이 하는 것. 바로 호미로 풀 뽑기. 편한 자세로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팍 팍, 호미에 힘이 들어간다. 이건 화풀이다. 심심풀이 화풀이. 클로버. 이 녀석들 뿌리가 얼마나 독한지는 익히 알고 있다. 아무리 깊게 팍 팍 파내어도 끝이 없다. 돌 조각 두들기면 손목이 부르르. 내 언제 호미질 해 봤던가. 겉모양 요란한 강아지풀이나 한련초 또 어저귀는 그냥 장난이다. 조금만 힘주어도 쑥쑥. 편한 자세지만 그래도 힘은 든다. 각도를 바꾸어가며 이 방향에서 뜯고 또 저 방향으로 몸을 돌린다. 리듬이 생긴다. 위치 이동에까지 리듬이 붙는다. 이건 술이다. 술 취해 부리는 심술이다. 애꿎은 풀들에게. 웬 인간이 들어와 우리에게 난리람. 머릿속에 쌓여간다. 생각이 쌓여간다. 내 지금 뭐하는 거지? 어쩌다 내 이렇게 됐지? 어쩌다 이렇게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되었지? 풀을 상대하는 사람은 그 풀에 매인다. 사과 키우는 사람이 사과에 매이고, 돼지 키우는 사람은 돼지에 매이듯이. 점심은 가볍게 아무거나 꺼내어. 다시 전장으로. 그렇게 뼈 빠지게 일했는데 표가 안 난다. 하긴 풀 작업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해도 해도 무슨 표가 나질 않는다. 지저분할 때 본 사람이라면 깨끗해졌네 하겠지만, 새로 보는 사람이라면 좀 가꾸지 하고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다시 시작. 질경이와 민들레. 이 녀석들도 보통이 아니다. 버티기 선수. 쑥은 어떻고. 이건 아예 해볼 테면 해봐라 뱃장이다. 하지만, 너희들 오늘은 잘못 걸린 거야. 내 오늘 기분이 썩 좋지 않거든. 손목뿐이 아니라, 이젠 아예 손바닥에까지 부작용이 온다. 감각이 다르다. 하지만 어쩌랴. 내 오늘 다른 생각이 없는 걸. 참, 그냥 나 몰라라 다 때려치우고 그냥 여행이나 떠날까? 경주 그 호텔이랑 설악산 그 호텔 숙박권 그냥 묵고 있잖아. 최고급 호텔의 손님들 표정이 머리에 떠오른다. 마치 나 비아이피야 하며 눈으로 이야기하듯. 그 호텔들 식당에서의 분위기는 어떻고. 그냥 떠나? 기분이 내키질 않는다. 파라 파. 그냥 마구 파내라. 맨날 술이야. 노래가 머리를 맴돈다. 술? 그거 맛본지 벌써 몇 년째. 해는 벌써 넘어가고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아직 목표량을 채우려면 멀었는데. 어쩌랴. 3뚝이 배고파할 텐데. 이 녀석들 먹이 주고 내 먹이도 챙긴다. 또 참치 깡통. 이젠 냄새만 맡아도 역하다. 그래도 먹고 난 깡통 이 녀석들 주면 대환영이다. 핥고 또 핥고. 요구르트 남겨주는 것 보다 훨씬 더 맛있게. 하긴 내 족발 사오곤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지만. 내 대충 처리하고 나면 세 녀석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푸짐하게, 아주 푸짐하게. 우드득 우드득 마치 사탕 씹듯이. 방에 들어온다. 어제 들여오자마자 고장 났다는 삼성 TV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서비스가 내일 오기로 했다고. 그래? 서울도 당일로는 안 되는 모양이지? 부재중 전화가 일곱 통이다. 전화기 놔두고 밖에서 일하는 통에 받지를 못했다. 급했던 모양이지? 서울 집 전화를 거니. 난리다. 얘들 '전 재산 압류' 통보가 왔단다. 그것도 두 통씩이나. 내용을 읽어달라고 했더니, 한 통은 재산세 때문이고 또 한 통은 지방세 미납 때문이란다. 와~하! 전 재산 압류. 요란하구먼. 하긴, 세금 체납 참을 만큼 지금 우리나라 재정에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 녀석들 미국 가있는 동안 빈 집에 우편물이 왔었는데, 그게 사라졌던 모양이지. 나라도 받았으면 우선 대신 내어주기라도 했을 텐데. 어쨌든 내일 처리. 인터넷 들어가 보니 오늘 눈에 띄는 기사는 단연 1조원 클럽. 회원 25명 중 여섯 명이 맨손으로 재산 일궈냈단다. 삐딱한 내 마음엔 계산이 거꾸로 돌아간다. 19명이 부모 잘 만난 덕에 1조원 이상 손에 들고 있다는 이야기. 하긴 부모 잘 만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내 아는 한명은 이조원이다. 그 친구에게 농담하면 자기는 천조원 앞에선 주눅 든단다. 얼마 전 보도로 내 알기엔 1000억원 이상 가진 사람이 200여명이라던데. 부자 400명 순서대로 세우면 마지막 사람 재산이 대충 500억원 정도였고. 이랬든 저랬든 참 장한 사람들이다. 그저 맨날 풀이야 내 눈엔 참 장하다. 난? 내 그런데 끼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약간 비추기만 하자면,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元과 金이 여기 나에게도 찬란하게 흘러넘친다는 self-esteem. Self-esteem? 우리말 뭐가 적당할까. 자긍심? 어쩐지 '나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라는 초라한 느낌이 들어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감? Pride라는 대응 단어가 떠오르지만, 그래도 여기엔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긍정적 뉘앙스가 섞여있으니 그래도 나은 편이다. 美 中은 어떨까 구글에 들어가니, 미국엔 10억 달러 이상 부자가 400명, 중국엔 공식적으로는 270명인데 요령껏 재산공개를 피할 수 있는 그쪽의 실상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540~6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측.(지난 9월말 新京報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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