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장강명의 '표백'

뚝틀이 2011. 10. 27. 12:37

현직 기자가 쓴 소설. 더구나 젊은이들의 세계에 대해 쓴 소설이라 해서 손에 잡은 책. 재벌 후계자의 이해할 수 없는 자살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슨 재벌비리를 파헤치려는 걸까? 기자의 글답게 산뜻한 시작.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라는 사람의 대학생활. 꽉 막힌 앞날. 취업에 성공했다는 '자그마한 출세'에 무슨 '인물'이라도 된 양 거들먹거리는 선배들. 미모의 동급생,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까닭모를 자살. 추리소설인가? 이야기에 더 빨려 들어간다. '표백세대'. 모든 틀이 다 짜여 있는 세상, 무엇을 보탤 수도 보탤 그 무엇도 없는 흰 그림인 이 '완전사회'에서 청년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 사회에 표백되어 가는 일밖에 없다.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그들의 실패는 억울하게도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자살 사이트에 '24시간 후에'를 예고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곤 하는 사람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절망 속에서의 발버둥, 그 문제의식을 제기하던 '대변인' 작가가 소설 후반에 들어서며 '타이르는 사람'의 입장으로 바뀌어간다. '뭐 이런 게 있어'. 덜컥거리는 나사 소리를 들으며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맥이 빠지기 시작한다. 그 다음 진행은 이런 종류의 소설에 언제나 집어넣을 수밖에 없는 반전. 하지만, 이미 그 진했던 긴장감은 다 사라지고 난 후.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의 느낌은 '그저 그런 한 편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