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Wolfgang Welsch의 '이성'

뚝틀이 2011. 11. 3. 20:13

원제는 ‘우리 시대의 이성 비판과 횡단이성(Vernunft. Die zeitgenössische Vernunftkritik und das Konzept der transversalen Vernunft)’인데, 이 책은 그 1권이다. 참 오래도 곁에 두었었다. 너무 어려워, 그냥 포기할까 몇 번 망설였지만, 그래도 그냥 관성으로, 다른 책 사이사이에 이 책으로 다시 돌아오곤 하며, 결국 ‘끝에 도달’하기는 했는데, 너무 허전하다. 도대체 뭐가 왜 이리 어려운 거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거 사실 철학자들의 논쟁 그 중계방송 아닌가. 후썰 이야기에 빠져 있다가 하버마스에 가서 뒤흔들리고, 또 푸코로 시원해졌지 싶었는데 데리다에서 다시 뒤집히고. 좋다. 다시 한 번. 하지만, 이번에는 피동적이 아니라, 해설가인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이제, 등장인물, 더구나 내 좋아하는 Wittgenstein까지, 이미 한 번씩 인사를 나눈 사이 아니던가.

 

한 때 '이성'은 학문의 왕이었다. 근대의 철학은 칸트의 '이성비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치 이성이란 피고를 법정에 세우고 그 한계가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보면서. 하지만, 그 후,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상황이 바뀐 이 시대에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헤겔까지 일관된 개념이었던 단일성이란 속성이 그대로 유효한가? 어느덧 이성은 더 이상 왕이 아니라 '겸손한' 존재가 되어있다. 난 '횡단이성'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을 이해하려면, 그 전에 '전체적인 그림'을 한 번 보는 것이 필수적이지 않겠나?

 

헤겔 후설 리터의 이성위기를 다루는 고전철학적인 시도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떻게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또 하버마스, 하이데거, 푸코, 글뤽스만, 바티모, 로티를 거치며, 또 이어서 데리다, 리오타르, 들뢰즈, 굿맨, 비트겐슈타인을 거치며, 이성을 보는 관점 그 역사와 한계 또 그런 것들이 우리의 사고체계와 어떻게 연관되어있는지 일종의 ‘조감도’로 정리되어나간다.

 

각 철학자에 대해 살펴보는 과정은 언제나 마찬가지로 진행된다. 내용을 그냥 요약해서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생각을 일단 재생한다. A에 대한 B의 비판, 또 C에 대한 D의 비판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너희들끼리 싸워봐라 그런 식으로. 물론 중간 중간 필요할 때마다 저자가 개입하기도 하지만, 저자의 비판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각 소개가 끝나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갈 때의 중간결론 형식 그곳에 이르러서다.

 

물론 문외한으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오기로 이해될 책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름과 연관된 ‘대표단어’만 들었던 여러 현대 철학자의 생각을, 그들이 이해하는 이성은 어떤 것인지, 오늘날 그런 것들이 아직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언어, 문자, 기호 또 신화, 은유의 철학사적인 의미, 또 ‘이론적’이란 무엇이고 ‘실제적’이란 무엇인지, 그런 사고세계에 빠져들며 접할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하며 책을 덮는다. 언젠가 내 철학적 소양이 더 깊어진다면 그때 다시 한 번 시도해보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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