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I & II'

뚝틀이 2011. 11. 29. 21:28

카노사의 굴욕, 하지만 하인리히 황제의 반격에 의한 교황 그레고리우스의 굴욕, 힘을 잃은 교황 우르바누스의 역전시도로서의 승부수, 십자군 성립의 배경이라 보는 작가의 눈이다. 어쨌든 이야기의 시작은 당연히 십자군의 행로로부터. 십자군 파병을 요청한 동로마제국 황제의 속셈은 따로 있고, 그로부터의 도움은 전혀 없고, 십자軍이라하지만 무슨 지휘체계가 있는 것도 아닌 각자 멋대로의 집단. 공작 백작 그 리더들 사이의 자존심 다툼. 하지만, 상대인 이슬람 측 역시 서로의 영지 쟁탈전에 여념이 없었고, 그들의 대응 미숙 덕분에, 비록 힘겨운 전쟁을 거치긴 했지만, 결국은 예루살렘 왕국 또 그에 이르는 통로를 지켜줄 공작령 백작령을 확보. 여기까지가 제1차 십자군 전쟁이다.

 

후속 지원 없는 가운데 힘겨워 넘어지기 직전의 예루살렘 왕의 호소에 대한 답으로 형성된 2차 십자군. 하지만, 이건 전쟁도 아니다. 그냥 우왕좌왕하다가 거의 몰살당하고 예루살렘 근처에 가보지도 못한 채 퇴각. 그 후 자신의 힘으로 근근이 버티는 기독교군의 애처로운 모습. 초기의 영웅들은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자기 것' 챙기기에 여념없는 십자군 진영. 반면 큰 그림에 눈 뜨고 '종교전쟁'이요 '성전'이라는 성격을 부각시키며 등장하는 누레딘 이어서 살라딘. 이들 이슬람 쪽 영웅의 등장과 함께 그들의 수중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는 예루살렘. 이것이 제2권의 내용이고.

 

서양역사가 아니라 꼭 삼국지나 무슨 무협지를 읽는 기분이다. 군웅할거. '큰 그림'을 이야기하지만, 실제 거기에 관심이 있는 이는 아무도 없고, 각자 모두 '자기 집단'의 이익에 몰두하는 군상들.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백작 공작이 주축이었던 1차 원정 때는 그나마 성도 해방이라는 '성과'라도 건질 수 있었지만, 폼 잡고 거드름 필 줄만 아는 독일 황제요 프랑스 왕이라는 자들이 이끈 2차 원정에서는 며칠 싸워보지도 못하고 완전 패배. 사실 분열상은 그 상대편 이슬람진영에서도 마찬가지. 아직 '종교 전쟁'이라는 개념도 없는 초기단계에서는 바그다드 쪽의 수니파와 이집트 쪽의 시아파의 갈등, 거기에다 투르크인과 페르시아인 내부분열.

 

'일방적' 서술에 휩쓸리지 않으려 미리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를 읽었고, 위키에 들어가 십자군에 대한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 읽은 이야기. 이 책이 단순한 역사책 이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소설이라는 점. 속생각이 각각인 '인간'들이 서로 지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그 모습, 그 '인간'들 사이의 갈등 그 심리적 묘사. 어느 지역의 전략적 가치, 또 마치 전쟁 중계방송을 하듯 싸움 진행의 묘사와 진용 해설. 그리고 큰 그림에서의 개별 사건에 대한 평가와 해석. 그런 점에서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순수 소설이란 관점에서는 실패작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작가가 마치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심판자나 되듯이, 운명 또 작전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통에,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에서 미리 김이 빠져버리곤 한다. 결과를 미리 아는 중계방송이 어찌 재미있을 수 있겠는가. 특히 2권에서는 그 정도가 심해, 빤한 이야기가 너무 오래 지속된다는 느낌이라, 읽어나가기가 지루할 정도. 앞으로 3권 이후의 책이 나와도 더 이상 읽을 마음이 없다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