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라는 별명으로부터 벗어나 흙과 땀 그 냄새 그 현실세계를 향해 크레타 섬으로 가는 길. 배에 오르기 전 내 앞에 나타난 60대 원초적 느낌의 야인. 무슨 느낌엔가 끌려 내 식사 준비와 그곳 갈탄광산의 작업감독으로 그를 고용하는 30대 나. 그 섬에서의 그와 나. 그렇다고 우리 둘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마을 사람들인 ‘그들’ 모두 역시 ‘하나의’ 주인공이다. 작년 이맘 때 우리말로 읽고, 이번엔 영어로. 둘 다 같은 작품의 번역본임에는 틀림없는데, 읽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지난번에는 언제 끝나나 그 생각에 읽기가 참 괴로웠었는데, 이번에는 단어 하나하나 찾아가며 정성을 들여서일까, 표현, 대화, 사고 세계, 모두가 새롭다.
펜과 잉크에 묻혀 지내는 화자 ‘나’의 세계를 ‘현실’과 연결시켜주는 것은 ‘땅’의 세계에서의 조르바 ‘그’다. 불가리아와 터키와의 전쟁에서 ‘그냥’ 싸우고 죽이며 살아온 ‘그’, 오직 술과 사랑과 노래 속에서 ‘신과 악마는 동일체’라고 믿는 ‘그’다. 하지만 조르바 그가 이야기하는 신은 기독교의 신과 그리스 신 사이의 경계선 없이 모호한 개념일 뿐. ‘그’와 ‘나’의 연결고리는 사업이 아니다. ‘그’의 손에 사업이 날아가고 전 재산이 날아간다. ‘그’는 ‘땅’의 세계를 보게 만들어주는 나의 ‘눈’이다. 빵과 술 채소가 들어가면 한숨과 웃음과 꿈이 만들어져 나오는 미묘한 기계, 사람이란 기계를 보게 해주는 ‘눈’이다.
아프리카에서 ‘성공적’ 사업을 하는 친구, 핍박당하는 동족 그리스인을 위험의 땅으로부터 구해내려 헌신적 노력을 기울이는 친구, 그들로부터의 편지. 부처의 가르침을 좇는 ‘나’. 이야기는 수평 수직으로 달린다. ‘나’도 연모의 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젊은 과부’, 그 과부에의 집단린치 거기에 이어지는 끔찍한 살해현장. “난 그들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을 증오해요.” 조르바의 울부짖음. “당신들 모두 살인자에요.” ‘마을 광대’의 독백. ‘늙은 과부’의 임종장면. 그녀가 키우던 앵무새의 또 그녀 자신의 시각에서 묘사되는 그 장면. 그녀가 숨도 거두기 전에 그 소유물들을 챙겨가려 아비규환의 장면을 연출하는 이웃들.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미친 수도사’.
연극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는 그 모습들. 그 상징성. 소설을 읽는 것인지 연극의 대본을 읽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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