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Robert Bolt의 'A Man for all Seasons'

뚝틀이 2011. 12. 6. 20:19

영국 역사상 어쩌면 가장 유명한 왕이었을 헨리 8세. 영국 기독교를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 독립시킨 왕. 그 동기는 헨리 8세의 결혼 문제. 이 희곡은 그때 그 와중에서의 토마스 모어 모습을 다룬다. 그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 전 이야기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기에, 이곳저곳 뒤져가며 그때 상황을 알아보니....

 

헨리가 원래 왕이 될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 헨리 7세는 당시 강국 스페인과 동맹을 맺기 위해 그의 형 아서를 이사벨라 여왕의 공주 캐서린과 결혼시켜 후계자로 삼고 있었는데, 아서는 결혼생활 몇 달 만에 죽게 된다. 이제 후계자는 당시 10살이었던 동생 헨리. 동맹관계를 유지하려, 양국 왕실은 헨리를 캐서린과 결혼시키려 하지만 문제는 형수와의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교회법. 교황 율리우스는 한 해 넘게 망설이다 그 길을 열어주고, 이 둘은 약혼하게 된다. 그로부터 2년 뒤, 13살 헨리는 아버지가 이제 더 이상 스페인과의 동맹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자기가 동의하지 않은 약혼은 무효라고 선언한다. 버티고 버티던 헨리는 그 나이 17살 때 부왕이 서거하자 할 수 없이 캐서린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어렸을 적부터 라틴어 스페인어 불어에 능해 총명하기 그지없던 헨리8세 그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즉위식 이틀 만에 선왕의 측근들을 부정축재혐의로 가두고, 그 몰수한 재산으로 학자와 예술가들을 왕실에 끌어들이며 르네상스 후원자임을 자처하고, 프랑스와의 접근을 모색하지만, 과도한 전함구축과 성채 짓기에 왕실의 재정은 거의 파산상태에 이르게 되고..... ‘왕자도 낳지 못하는’ 왕후 너무나 신앙적인 캐서린을 떠난 왕의 마음은 Anne Boleyn이란 여성에게 다가가는데, 이 ‘여우같은’ 앤은(자기 언니 Mary에게 사생아를 낳게 한 이 ‘방탕 왕’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왕후의 자리를 요구하니....

 

몸이 달은 그는 형수와의 결혼은 성경에도 어긋나는 원천적 무효였다며 로마 교황청에 인정해달라는 청원을 넣어보지만, 신성 로마제국의 카를 5세(그 황제의 숙모가 바로 캐서린)의 포로나 다름없는 교황이 그럴 수는 없는 일(또 체면이 있지, 어찌 두 번씩이나 번복할 수 있겠는가). 근본적 해결방법은 하나, 교황이 아니라 자신이 결정권자가 되는 것. 결국 헨리 8세는 국왕지상법을 발표하여 자신이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 되는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그 나이 41세 때 자신의 재혼을 ‘허락’하고 앤을 왕비로 맞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후일 앤 역시 아들 아닌 딸만 낳게 되고 헨리 8세는 다시 이 왕비마저 버리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영화 ‘천일의 앤’)

 

이 연극은 그 막바지 당시의 이야기.

어렸을 적부터 왕위를 보좌해왔던 추기경 Wolsey도 교황청과 손잡고 배신했다는 누명을 씌워 제거한 왕은,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Thomas More(사계절의 사나이란 바로 이 사람)로부터 자신의 재혼에 대한 축복의 한 마디를 얻어내려, 그를 후임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왕의 이혼과 로마 교황과의 결별을 마음 아파하는 이 토마스 모어는 왕의 신하로서가 우선인가 아니면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우선인가 고민하다 ‘그 어떤 의견도 내지 않으려’, 즉 ‘침묵’을 택하려, 대범원장 직을 사임한다. 하지만, 왕의 측근 Cromwell(이 사람은 나중에 수석장관이자 ‘왕의 영적 대리인’으로 임명되기까지 하지만, 앤의 죽음 후 참수된다)의 집요한 공작 끝에 반역죄로 몰려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니.......

 

희곡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 누구나 이미 그 내용을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요란한 장면을 집어넣을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생명은 대사다. 말 하나하나에 고뇌의 무게가 실린 대사. 손자들과 낚시나 하며 쓰고 읽고 생각하겠다며 직에서 물러난다는 그에게 쏟아지는 아내 Alice의 원망, ‘현실적이 되어보라’ 딸 Margaret의 애원, 크롬웰의 올가미에 끌려들어가고야 마는 모어의 절친한 친구 Norfolk 공작. ‘자리’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섬기던 사람에 대한 위증도 마다 않는 Rich. 세속과의 타협보다는 양심이라는 명예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모어.

 

God made "man to serve him wittingly, in the tangle of his mind! If he suffers us to fall to such a case that there is no escaping, then we may stand our tackle as best we can. . . But it's God's part, not our own, to bring ourselves to that extremity! Our natural business lies in escaping!"

꼭 이런 깊은 뜻의 대사만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직을 사임한 것을 두고, Roper가 참 멋있는 제스처라고 하자, 이런 이건 전혀 제스처가 아니라고 외치다, ‘사람들에게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의미로서의 제스처 단어선택이라는 그 의미 설명을 듣고 기뻐하는 그 모습.

 

책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무겁게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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