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층 천장이요 이층의 바닥이 될 상판 치기를 위해 오늘 테두리 작업.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크레인으로 기둥 세우기 전에 가로목 작업을 그렇게도 강조했건만, ‘다 하는 방법이 있으니 걱정 마세요’ 말에 그냥 약하게 물러섰던 것. 거꾸로 가는 작업에 애써 세워놓은 기둥이 옆으로 튕겨져 나갈 정도로 무리한 힘을 받는 것을 보며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솟는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에선 양보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어디 한 번 고생해보시지’ 하는 그런 고약한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있어서였을까. 어쨌든,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결국은 오히려 더 고약한 상황이란 결과를 낳게 되지 않았는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차선의 해결책 설계변경을 머릿속에 굴리며 작업중단을 선언한다. 공사 시작 후 여태까지 한 번도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어본 적 없었지만, 오늘 처음으로 강하게 내 표현을 해본다. 한 번만 시도를 해보고 그래도 되지 않으면 내 생각에 따르겠단다. 더 이상 화를 참을 수 없어 차에 올라 현장을 떠난다. 어차피 월말인 오늘 이들의 임금을 계산해야 하는 날이니. 차타고 가는 내내 생각해본다. 저들도 저리 당황하고 있지 않은가. 미안해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참자 참아. 전에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전에 그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이었는지, 아니 이들이 아니면 내 이런 원목 구조 집을 지을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나, 그런 생각만 떠올리면서. 농협 자판기 진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현장에 돌아오니, 얼마나 무리한 힘을 가했는지는 모르지만 내 설계대로의 건널목이 앉아있다.
이 비틀리고 뒤틀리며 구멍 숭숭 뚫리는 2층 높이 육중한 기둥을 보며 어쩌면 가장의 운명이라는 것도 이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둥에 대한 부탁은 지붕의 무게 세상의 무게를 견뎌달라는 것이었지만, 그건 너무 당연한 것이고,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건너지르는 건널목들이 지탱할 자리를 마련해줘야 하기에 뿌리 채 흔들리곤 하는 것 그 역시 당연히 견뎌야하는 것이고.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무게 지탱하는 힘은 약해지고.... 하지만, 기둥이란 것이 원래 집이라는 구조 속에서 그 의미를 갖듯 가장 역시 집식구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 아니던가. 행복을 위해 여기저기 갉혀 먹히다가 견딜 수 없게 되면 쓰러지고 마는 가장.
오늘 작업 끝내며 또 다시 이견. 내일 서까래 작업에 들어가겠단다. 상판 작업 끝나기 전에는 안 된다고 그렇게 누누히 이야기했건만, 이미 추가인력까지 마련해놓은 상태라며.... 이번에는 안 된다. 내 또 굽히면 안 된다. 이미 오늘 예절상의 양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는가. 안전판도 없이 6.5미터의 고공에서 작업하는 것 내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 집에 돌아와 유사장에게 전화, 내일 상판 작업에 대한 계획 세우기에 들어간다. 여기에도 머피의 법칙인가? 이렇게 중요한 때? 급히 몇몇 자재를 마련해야하는데, 내일은 노동절이라 어떤 영업점도 열리는 곳이 없단다. 비상수단으로 오늘 배달된 서까래의 일부를 전용하기로 잠정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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