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시바 료타로의 ‘패왕의 가문’(司馬遼太郎, 覇王の家)

뚝틀이 2012. 10. 23. 21:55

司馬遼太郎란 작가의 필명이 재미있다. 司馬遷에 이르려면 멀었다는 겸양의 뜻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하지만 작가가 추구하는 스타일이 어떤 쪽인가를 짐작케 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전체 역사의 흐름에서 묘사인물의 위치가 어디인지 또 그 묘사인물의 인간성이나 심리상태는 어떠했는지 그쪽에 주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고 싶다는 그런 의도.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점차 혼란스러워진다. 자신이 쓰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를 어찌 이토록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평생 독창적인 그 무엇도 보여주지 못하고 남 모방 그 이상을 넘어보지 못한 사람이요, 영웅호걸다운 기개를 펼쳐본 적 없이 그저 소극적으로 조심조심 살아온 사람, 그의 성공은 단지 덜 깨인 미카와(三河)사람들의 외부 세력을 병적으로 경계하는 폐쇄적인 성격에 바탕을 둔 단결심 거기에 의존한 것이고. 주인공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단 한가지, 그가 자신을 또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그런 면.(사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바로 이런 설명 부분) 저자의 생각은 책 끝부분에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일본 역사의 흐름으로 볼 때, 이후 200여 년간의 세월을 德川幕府의 폐쇄적인 세력이 아니라 개방적 성격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스타일의 권력이 다스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

 

소설은 인접 이마가와(今川)가에 인질로 잡혀있는 소년 이에야스와 그의 ‘모국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그 지방 사람들 또 주인공 성격형성의 뿌리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후는 당연히 당시 戰國時代의 합종연횡이야기. 마치 바둑판에 놓인 돌의 형세와 여기에 새로 놓이는 돌의 의미에 대한 해설처럼 차분하고 철저한 묘사, 마치 조각품을 아기자기하게 이리저리 만져가며 다듬는듯한 그런 느낌이다. 특히 전투장면 묘사에서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나 십자군 이야기를 읽는 그런 느낌까지 든다.(물론 작가 司馬遼太郎가 이 소설을 ‘小説新潮’에 연재한 때가 1970년부터 그 다음해까지라고 하고 塩野七生의 이야기는 그 훨씬 후이니 당연히 그녀가 이 작가의 묘사방법을 흉내 낸 것이겠지만) 하지만 여기에선 한 수 더 위다. 적장의 목을 베는 장면에선 마치 여러 위치에서의 카메라를 한 대 한 대 돌려가며 다른 각도에서 검토하듯 묘사에 묘사가 이어진다. 이 사료 저 사료의 관점을 되짚어가며. 이 작가는 트럭 한 대분의 자료를 마련한 다음에야 소설 한 권을 쓴다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맞는 듯.  

 

여기 나오는 전투의 규모와 주인공들의 인간 스케일은 내가 익숙해져있는 사기나 초한지 또는 삼국지 같은 중국 쪽 이야기들에 비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땅이라는 스케일에서 부터 다르니 어쩔 수 없다 치지만, 아주 크게 드러나는 차이가 하나 있는데, 바로 사무라이(侍)의 행동양식이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이 시대까지 아직 절개라는 개념 그런 것은 없었고 사무라이 관점에서의 領主 의미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우산이요 즉각적인 보상과 포상을 해주는 물주 그뿐이었다. 그래서 우두머리가 죽게 되면 즉각 그때까지 적이었던 사람조차도 새로운 주인으로 모시는 그런 것이 당연한 사고방식, 일본인들의 실용적 복종주의를 설명하는 한 단면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부끄러울 수도 있는 관점을 객관적으로 묘사해나가는 작가의 냉철함 이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