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살 세 살 때 차례로 아버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여섯 살 때는 할머니까지 잃고 자라난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노벨문학상 수상자 川端康成, 그에게 형성된 감성은 어떤 것일까. 무릇 문제작이라는 문학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여기서도, 그저 美的 감성 그것만이 중요할 뿐, 세상 통념적인 선과 악 또는 사회적 가치관 그런 개념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新感覺派에 속하는 이 소설엔 어찌 보면 ‘줄거리’조차 없다 할 그 정도다.
소설은 제3자의 입장에서 썼지만, 1인칭 입장이라면 아마 이런 식일 것이다.
‘나’ 시마무라(島村)는 부모로부터 넉넉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하는 일? 서양무용에 대해 글을 쓰는 그 정도.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서양무용을 실제로 본 적도 없고 그저 외국사진이나 글만 보면서 서양무용이란 이런 것이겠지 상상하며 쓰는 그 정도다. 아무 뜻도 없는 공허한 글을 써대는 것이라고? 생각은 마음대로, 어차피 난 그 글들을 자비로 써내고, 또 내 글이 그 누구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는 편이니. 처자? 물론 있다. 난 엄연한 가장이다.
몇 년 전엔가 내 어느 온천마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난 게이샤 한 명을 불렀는데, 내 방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순수한 미모’를 맞는 순간 거의 충격에.... 그녀의 이름은 고마코(駒子). 난 그녀에게 솔직히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과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고, 그래서 육체적 관계는 다른 게이샤를 원한다고, 일종의 ‘정신적 관계’랄까. 우연히 알게 된 사실, 그녀가 게이샤로 나선 것은 어떤 환자의 병간호를 위해서라고.
그 후 매년 이곳을 찾게 되었다. 난 駒子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는 나로부터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역시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보였고. 그런데, 이번 여행길에서 같은 칸에 탔던 남녀를 ‘관찰’하게 되었었는데, 젊은 남자는 환자였고, 그 옆의 젊은 여자는 마치 ‘엄마’처럼 그 환자를 돌봐주고 있었고. 여기 역에 내려 역장과 인사를 나누는 내용을 들으니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 그 여자의 이름은 요코(葉子). 천사 같은 그 모습.
우연히 알게 된 사실. 그 환자와 그녀가 駒子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이어 안마사로부터 듣는 이야기. 그 환자와 駒子는 약혼자 사이, 그런데 동행해온 요코(葉子)는 그 환자의 새 여자. 하도 궁금해 駒子에게 직접 물어보니, 그 환자의 어머니가 駒子의 춤 선생이었는데, 직접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자기 아들과 결혼했으면 하는 그런 눈치더라고. 駒子가 동경으로 떠나 게이샤가 된 것도 사실은 그 아들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 새 여인과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는 이 세 사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시작 장면, 거기서 나는 이 남녀를 기차의 창에 비친 모습으로 보았고, 창밖의 희미한 풍경에 겹쳐지는 이 여인의 상에서 무슨 ‘거룩함’까지 느꼈고.... 여기 와서 駒子의 집에 갔을 때 들려왔던 葉子의 그 ‘청아한’ 목소리. 내 마음 어디인가로부터 느껴지는 그녀에 대한 호감.
“.....오히려 그럴수록 駒子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나’는 駒子가 가여웠고 동시에
내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보는 빛을 닮은 눈이 葉子에게 있을 것 같아 ‘나’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별 스토리가 없다. 소설 내내 이런 식이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의 이런 그림도 그린다.
“승객은 쓸쓸할 정도로 적었다.
쉰이 넘은 듯한 사나이와 얼굴이 유난히도 붉은 처녀가 마주앉아 무엇인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
먼 여행길에 오른 사람들처럼 보였으나 그게 아니었다. 제사 공장의 굴뚝이 있는 역에 닿자, 나이 지긋한 사내는 황급히
선반에서 짐을 내려 창밖으로 던지며, "그럼 인연 있으면 또 만나자고" 하고 처녀에게 작별 인사를 남긴 채 차에서 내렸다.
‘나’는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제 스스로 놀랐다. 그로 인해 ‘내’가 여자와 헤어지고 돌아가는 길이란 것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 한 차를 같이 탄 두 사람인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사내는 행상인이거나 무슨 그런 사람 같았다.”
‘나’는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그곳을 찾게 되고, ‘나’는 駒子에게 깊이 정들지 않으려 하지만, 그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면서도 자기의 모든 것을 ‘나’에게 전하려는 듯 점점 더 스스럼없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그녀는 葉子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견제를 하면서도, 또 동시에 마음에 없는 ‘좋은’ 말만 들려주면서....
그러던 어느 날, 마을극장에 일어나는 화재. 달려간 화재현장에서 목격하는 한 여자의 추락 모습, 葉子의 모습. 그때,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감싸 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내려와 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나’는 ‘내’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은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눈에 띌 만큼 청명한 하늘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의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였다.”
‘아무 것도 아닌’ 이 소설이 왜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간결한 문체와 정겨운 묘사 그것이 이 작품이다. 마치 조용히 움직이는 카메라가 잡아내는 정겨운 모습에 애절한 음악이 올려지고, 거기에 시가 낭송되듯..... '순수'와 '허무'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수채화’ 그것이 이 작품이다.
참 ‘유치한’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아니, 화가 난다. 왜 우리 이 땅에는 이런 작가가 없었지? 이런 서정적 묘사가 꼭 이 나라 이 작가에게만 가능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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