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동화 한 편

뚝틀이 2013. 5. 25. 20:39

옛날, 옛날, 아주 옛적에, 어느 산속 마을에 한 가족이 살고 있었어요. 그림같이 아름다운 가족이었죠.

하지만 땅은 거칠었어요. 농사를 짓기에도 힘든 땅이었죠. 새벽부터 밭에 나가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일하고 일하다, 높은 하늘에 떠있던 해마저 지쳐 불그스름하게 기운 후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만, 아이들 먹을 것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게, 또 아이들 재롱을 볼 수 있다는 게 기쁨이었어요.

아들이 셋, 딸이 둘. 누구하나 덜 귀여운 녀석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론 막내를 제일 아꼈었어요.

세 살 난 이 녀석에겐 밤에 혼자 일어나 돌아다니는 병이 있었거든요. 저러다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을까? 밤 짐승에게 물려가지는 않을까?

식구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마당에 매놓은 염소, 그 목줄에 걸려있던 딸랑딸랑 종을 아이에게 걸어놓는 거예요. 이제는 좀 마음 놓고 잠들 수가 있게 되었죠.

낮에도 종을 벗어놓지 않으려는 막내.

딸랑딸랑 그 맑은 종소리 속에 식구들은 행복하기만 했어요.

 

행복? 행복이라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끊임없이 계속되기만 할 수 있는 것이던가요?

이 마을에 불행의 그림자가 덮치기 시작했어요. 가뭄.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며 땅이 말라갔죠.

밭은 갈라지고, 거기 심어놨던 것 다 말라죽고, 먹을 것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죠.

피스타치오 나무도 힘없이 말라갔어요. 팔 것마저 없어지는 거예요.

엎친 데 덮친다더니, 마을에 괴물이 나타났어요. 자기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거예요. 그것도 제일 귀여운 아이를.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집 아이들을 몽땅 다 데려가겠대요.

수많은 산과 강 너머 머나먼 곳에 거대한 성을 짓고 산다는 괴물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누가 실수로 고개를 들거나 몰래 숨어서 그를 보면 그걸 어떻게 알아챘는지 다 잡아가버렸거든요.

 

드디어 이 집 차례라 되었어요. 지붕에서 들려오는 크르릉 소리, 내일 아침 해뜨기 전까지 한 아이를 바치라고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란 어떤 것일까요. 바로 이럴 때 쓰는 말 아니겠어요?

아이들 몰래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와 아빠. 이야기?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어요. 그냥 울뿐이었죠. 흐느낌 그게 이야기였죠.

어느덧 밖에는 금방이라도 해가 솟아오를 듯 밝은 기운이 돌기 시작하고, 이제 시간이 없어요.

아빠가 밖에 나가 똑같이 생긴 돌 다섯 개를 주워들고 왔어요.

거기에 아이들 이름을 하나 씩 적어 자루 속에 넣고 엄마에게 내밀었죠. 이 방법 밖에 없다고.

엄마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럴 수가 없다고. 고를 수가 없다고.

할 수 없이 아빠가 골랐어요. 누구였겠어요. 이 이야기를 듣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겠죠? 바로 막내 이름이 적혀있는 조약돌.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막내의 이름을 불렀죠.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막내 이 녀석 언제 자고 있기라도 했었냐는 듯 벌떡 일어나 땔랑 소리를 내며 달려와 아빠 품에 안겼어요.

문밖에 세워진 아이,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지만, 울기 시작했어요.

들어오겠다며 울부짖는 막내의 소리를 듣는 부모의 가슴은 찢어질 것 같았죠.

이윽고 쿵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의 울음소리가 멀어져갔어요.

 

이웃의 위로가 무슨 소용 있겠어요. 아빠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고 말이라는 것 역시 사라졌죠.

혼자 걷다가, 바위에 걸터앉아 먼 산만 바라보다가, 속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분노가 점점 더 커졌어요.

괴물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괴물과 싸워볼 생각조차 못했던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분노가.

사람들은 걱정하기 시작했죠. 저러다 혹 어찌 되는 건 아닐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집집마다 이렇게 아이를 바쳤건만, 가뭄이 끝나지를 않는 거예요. 벌써 몇 해째.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졌어요. 자다가 슬그머니 혼자 일어나 어딘가로 떠나버린 거예요.

 

걷고 또 걸었어요. 산딸기랑 버섯 따위가 눈에 띄면 그나마 다행, 며칠씩 전혀 먹지도 못하고 걸었어요.

신발도 다 떨어져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옷도 다 헤어지고, 몸은 봐주기도 힘들 정도로 말라갔지만, 걷고 또 걷고, 계속 걸었어요.

도대체 어디로 향한 걸음일까요. 그래요. 산 넘고 강 건너 그 괴물이 살고 있다는 마법의 성을 찾아가는 거예요.

드디어 눈앞에 그 성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보통 같으면, 여기 이 장면에선, 다시 기운을 추슬러 싸울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버지는 그냥 바위를 기어오르기 시작했어요.

여기 걸리고 저기 밀리며 찢겨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말이죠.

 

크르릉 소리, 웬 놈이냐 내 성을 넘보는 자가.

내 너를 죽이러 왔노라.

나를 죽이러? 내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네가 우리 막내를 데려가지 않았는가. 긴 말이 필요 없다. 오늘이 네 마지막 날이로다.

얼핏 생각하기엔 전혀 상대가 될 수 없는 이 아버지에게 괴물의 한 방이 그냥 날아올 것 같은데,

이 괴물, 웬 일인지 머뭇거리며 생각에 잠겨있다 성문을 열어주는 거예요. 용감한 사나이를 만나서 반갑다며.

쓸데없이 시간을 끌지 말고 결투를 하자는 그에게, 말없이 앞에 서서 길을 안내하는 것 아니겠어요?

 

으리으리한 궁, 하늘에 닿을 듯 높은 천장, 그 천장을 바치고 있는 엄청난 굵기의 기둥들.

한참을 앞서가던 괴물은 말없이 한 쪽 벽을 드리운 커튼을 걷어냈죠.

짙푸른 녹색으로 우거진 숲, 온갖 색깔로 만발한 꽃, 그 사이를 흐르는 시냇물.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이 광경.

글쎄 전설 속에서나 가능할까, 이 아버지는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죠.

그때 눈에 들어오는 아이들 모습. 자세히 보니 그 사이 좀 더 자란 막내의 모습이에요.

친구들과 숨바꼭질 하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는 그 모습.

유리창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죠. 막내야! 막내야!

 

아무리 소리 질러봐야 저기서는 들리지도 않고 이 안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괴물’의 말.

나에게 대드는 용기가 가상하니 저 아이 데려가는 것을 허용하겠다.

정말로?

그렇다. 그렇지만 하나는 알아두어라.

저 아이는 지금 여기서 아주 좋은 음식을 먹고, 최고급의 옷을 입고, 최고로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배우고 있다.

여기 이 모래시계를 놓고 갈 테니, 그때까지 신중히 생각해본 후에 결정을 하도록.

그 말을 마치자마자 사라지는 괴물. 고민이 깊어지는 아버지.

저 아이를 데려가 봐야, 자기 농사나 죽도록 도와주는 것이 일일 테고, 또 어쩌면 저 아이도 이웃집 굶어죽는 아이들처럼....

생각이 계속될수록.... 분을 못 이겨, 모래시계를 내던져 깨뜨려버리고 마는 아버지.

 

돌아온 괴물, 그에게 소리치는 아버지.

너야말로 정말 잔인한 ‘괴물’이로다.

잔인한 것인지 자비를 베푸는 것인지는 어느 쪽에서 생각하느냐의 차이일 뿐.

만일 내가 너희 마을에서 저 아이들을 걷어오지 않았더라면?

자, 이제 결투신청은 없던 것으로 하고 돌아가도록 해주지. 가는 길에 이걸 먹도록.

그가 내미는 까만 액체가 든 작은 병 하나.

 

한 편, 집 나간 아버지를 걱정하는 식구들. 이젠 희망을 거의 다 포기한 상태.

그때, 저기 먼 곳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아버지. 반가워 뛰어 마중하는 엄마, 그리고 아이들. 몰려오는 마을 사람들.

어디를 갔었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는 아버지.

그도 그럴 것이 그 까만 물은 머릿속에서 기억을 지워버리는 약이었던 것.

성에 갔던 거기에서 있었던 일들뿐만 아니라 막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

단지 가끔 염소 목걸이가 달랑거리면 무엇인지 생각하며 허공을 쳐다보곤 하는 그.

 

‘The Kite Runner’와 ‘A Thousand Splendid Suns’에 이어 Khaled Hosseini의 세 번째 작품이고, 또 내 손에 잡힌 그의 세 번째 소설이기도 한 ‘And the Mountains Echoed.’ 기다릴 수가 없어 이 책, 또 Dan Brown의 ‘Inferno’를 주문해 초판이 나오자마자 받았다. 비록 ‘다른 책 몇 권 값’이 나갔지만, 그래도 몇 권 같이 묵직한 느낌. 읽고 있던 책 잠깐 덮어놓고 이 책을 펼치자 나온 이 동화. 책 내용의 예고편 성격이지만, 이 자체로도 훌륭한 하나의 독립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