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2년에 나왔지만, 이번 달에 나왔다 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강렬한 느낌의 단편소설.
상징성을 따지는 것은 각자의 몫. 어쨌든 우연한 발견. 내가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
‘줄거리’라 할 것은 없고, 그저 ‘느낌’이다.
물론 이 ‘긴’ 글을 번역할 마음은 없다. 그저 ‘느낌’이 살아있을 정도로만 추려본다.
http://www.gutenberg.org/files/1952/1952-h/1952-h.htm
우리 같은 보통사람이 여름에 이런 고색창연한 건물 방을 얻는다는 것은 드문 일.
위압적 풍모에 무슨 전통이 배어있는 그런 분위기의 집인데, 내 생각에는 유령이 나오는 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오래 비어있었고 또 이렇게 싸게 나올 수 있겠는가?
내 남편 죤John은 의사다. 아마 그래서 내 회복이 더딘 것 같다.
(물론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끼적거리다 버리는 종이에나 쓸 수 있을 뿐.)
그 사람은 내가 아프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명망 높은 사람이, 더구나 남편이라는 사람이,
이 사람 약간의 히스테리 경향이 있을 뿐 그저 일시적인 우울증이라고
확실하게 잘라 말하는데, 내 뭐 어쩔 수 있겠는가.
나의 오빠 역시 명성 있는 의사인데, 같은 식의 얘기다.
회복될 때까지는 난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
내 생각으론 뭔가 기분 좋은 일을 하면서 약간 흥분도 하며 변화를 겪는 것이 좋을 텐데도 말이다.
때때로 난 지금 이 상태에서도 사회적 접촉 유지하며 약간의 자극도 느끼는 그런 것을 바라지만,
남편 생각으로는 그런 것이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란다.
고백하건데, 그게 참 나를 화나게 만든다.
어쨌든,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에서는 여기 생각에 머무를 수밖에.
여긴 참 아름다운 곳이다. 마을에서도 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고, 길에서도 쭉 안쪽으로 들어와 있고.
이 집엔 뭔가가 이상하다. 꼭 유령이 나올 것 같다.
달 밝은 어느 밤, 남편에게 내 그 얘길 했더니 바람 때문이라고 창문을 닫더라.
난 때때로 내 자신도 이해 못할 정도로 남편에게 화를 낸다. 아마 지금의 내 신경상태 때문이리라.
그래서 내 스스로를 다스리려 애쓰다보면 그와 함께 있는 게 너무 피곤해지곤 한다.
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방이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원래는 아래층을 원했었다. 베란다에 장미도 아름다운 그쪽을.
그런데 남편이 반대했다. 그 방엔 침대 둘이 안 들어가고, 창문이 하나뿐이고, 또 자기가 따로 쓸 옆방이 없다나 뭐 그런 이유로.
남편은 매우 자상하고 주의 깊다. 거의 시간 단위로 처방을 내려주는 그의 정성을 내 무시한다면 그건 정말 몰염치한 거겠지.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여기 온 것은 전적으로 날 위해서란다. 맨 위층 방을 얻은 것도 신선한 공기 흠뻑 취하라고 그런 것이고.
지금 이 방은 아주 크다. 거의 층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창으로 사방을 볼 수 있고. 공기도 시원하고 빛도 잘 든다.
보육원이었다가, 놀이방이 되었다가, 우리가 들어온 것. 애들을 보호하려 창살도 든든하게 만들었다.
벽지 꼴로 보건대 사내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침대 머리맡에는 높이까지 큰 덩어리가 떨어져나갔고 반대편에는 좀 낮은 곳까지.
내 평생 이렇게 흉한 곳은 처음이다.
이 화려하도록 불규칙한 무늬들을 글쎄 예술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 모양들을 쫓아가다보면 눈이 어지럽다.
쭉 나가던 곡선이 화가 난 듯 각도를 휙 트는가 하면, 듣도 보도 못한 뒤틀림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곤 한다.(이건 자살행위다.)
또 색깔은 어떻고. 연기에 거슬린 듯 지저분하게 누런 것이 햇빛 각도에 따라 스멀스멀 움직여나가듯 역겹기 그지없고.
아직 오렌지색으로 남아 있는 곳에서는 유황 느낌이 나고. 아이들이 이곳을 얼마나 싫어했을까.
남편이 온다. 이 글을 치워야한다. 그는 내가 글 쓰는 것을 싫어한다.
난 이 고약한 방 창가에 앉아 글을 쓰곤 한다.
내 기운이 떨어져 못 쓰는 경우를 제외하곤 내 글쓰기를 방해할 그 무엇도 없다.
그는 하루 종일 나가있다. 위중한 환자가 있을 경우엔 때때로 밤에도 못 들어온다.
내가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는 게 기쁘다. 하지만 난 내 증세가 아주 걱정된다.
남편은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를 모른다.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고 그래서 그는 마음을 놓고 있다.
그저 신경성뿐인데 뭘, 그 때문에 내 할 일을 못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난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그를 편하게 해주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짐이 되어 있다니.
옷을 입고 이야기를 나누고 뭐 그런 것도 내게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무도 모른다.
메리Mary가 애기를 잘 봐줘 다행이다. 얼마나 귀여운 아기인데.
그런데 난 애기와 같이 있을 수 없다. 내 신경성 질환 때문에.
남편은 평생 불안해해본 적이 없을 것 같다. 내가 이 벽지에 대해 얘기할 때도 그냥 웃어넘기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벽지를 새로 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엔 그냥 놔두자며, 그런데 신경 쓰는 것이 내 건강에 해롭다 하지 않던가.
벽지를 바꾸고 나면 다음은 침대 그 다음은 창틀 또 그 다음은 계단 손잡이 이런 식으로 계속될 것 아니냐며.
지금 이대로도 당신이 좋아지고 있는데 겨우 석 달 세 들어 있는 이 집에 공사를 벌이고 싶지 않다며.
그럼 그 예쁜 방들이 있는 아래층으로 옮기자고 하니까 날 꼭 껴안아주며 내가 정말 원한다면 지하실로도 갈 수 있다 하더니 그냥 여기 침대랑 벽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난 내 변덕스러운 기분으로 남편을 불안하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이 흉측한 벽지만 빼고 본다면, 방도 넓고, 내려다보이는 정원의 꽃과 나무도 좋고, 이제 이 방에 익숙해져가고 있지 않은가.
또 하나. 난 저기 내려다보이는 灣, 이 집에 속한 선착장, 또 여기서 그리로 가는 그늘 드리운 길의 모습도 좋아한다.
그 길을 걷는 수많은 사람들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노라면 남편이 주의를 준다.
글쓰기 좋아하는 내가 그런 상상을 시작하면 쉬 흥분될 수 있고 그러면 내 신경쇠약이 도질 수 있다고.
그래서 내 스스로도 그러지 않으려 애쓰곤 한다.
자꾸 눈이 돌아오는 지점들이 있다. 목이 부러진 것처럼 선이 푹 꺾이고 둥그런 눈이 거꾸로 매달려 노려보고 있는 그런 모양이.
건방지게 떡 버티고 지켜서있는 그런 곳을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위아래로 또 옆으로 기어 다니며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 녀석들.
어떤 곳엔 하나는 위 하나는 아래로 높이가 맞지도 않는다. 이런 다양한 표정을 보다보면 재미나기도 하고 겁이 나기도 한다.
예전 사무실, 거기 의자는 내 친구였다. 무엇인가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난 그 의자에 폴짝 뛰어 앉곤 했었다.
바닥도 마찬가지다. 찢기고, 뚫리고, 터지고. 침대도 마치 전쟁을 겪은 것 같다. 그래도 다 좋다. 내가 싫은 것은 오직 저 벽뿐.
시누이 제니Jennie가 온다. 이 글을 감춰야한다.
그녀는 내가 바로 이 글쓰기 때문에 아픈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창문 멀리로 내려다보일 때만 글을 쓰곤 한다.
빛이 어떤 특정 방향으로 들어올 때 그때서야 비로소 보이는 무늬들도 있다. 몰래 기어들 듯 사람의 마음 거슬리는 그런 무늬들.
이제 시누이가 계단을 올라온다.
독립기념일 연휴 한주일 동안 여기 와 북적거리던 어머니와 넬리Nellie 또 아이들은 이제 다 돌아갔다.
물론 난 꼼짝 못했고 일처리는 다 제니 몫이었다. 그래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남편은 내 회복이 너무 더디면 날 미첼Weir Mitchell에게 보내겠다고 한다.(이런 치료법을 주장하는 당시 유명 의사의 실명.)
난 그러고 싶지 않다. 그곳에 내 친구 한명이 있는데, 내 남편과 내 오빠보다 훨씬 더한 인간이라고 한다.
난 점점 더 신경질적이고 도발적이 되어간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울고, 대부분의 시간을 이렇게 울며 지낸다.
물론 남편이나 누가 있을 때 그러는 게 아니고 혼자 있을 때 말이다.
난 요즘 대부분 혼자 있다. 남편은 계속 바쁘고, 내가 원하면 제니는 날 내버려둔다.
그래서 난 정원을 또 그 예쁜 길 따라 조금 걷다가 또 아래층 장미꽃 옆에 앉아 있다가 방으로 돌아와 눕곤 한다.
벽지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벽지 때문에, 난 이 방이 좋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다.
벽지 무늬들을 방구석 밑 부분으로부터 하나하나 훑어 올라가며 분석해나간다. 무슨 규칙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는 무늬들을.
폭이 넓어지며 피어나다 환상적으로 폭발해 멍청한 기둥 모양을 만들고, 대각선 방향으로 달리다 해초처럼 구불구불거리고,
또 저녁 무렵 낮은 각도에서 빛이 들어오면 구석 한곳에서 방사선 모양으로 사방으로 선이 뻗어나가고.....
그러다보면 지쳐서 잠이 들게 된다.
그런데 지금 내가 이런 걸 왜 쓰고 있지? 남편이 보면 참 모를 일이다 할 테지만, 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써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놓인다. 문제는 이렇게 쓰는 게 힘에 부친다는 것.
남편은 내가 기력을 되찾아야 한다며 온갖 맛있는 음식이랑 진귀한 약을 마련해온다. 그런데 이젠 차분히 생각하는 것조차 힘겹다.
남편은 나를 팔로 안아 위층으로 데려와 침대에 눕힌다. 그리고 내 머리가 지칠 때까지 책을 읽어준다.
내가 자기의 사랑이요 전부라 이야기하며 내 몸 잘 챙기란다. 나 이외에 누구도 날 돌볼 수 없다며, 상상 같은 것을 하지 말란다.
하나 다행인 것이 있다면, 내 아기가 잘 크고 있으며, 여기 와서 이 끔찍한 벽지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벽지엔 나 이외의 그 누구도 모르는 것이 있다. 겉 패턴 뒤에 형상들이 있는데 날이 갈수록 그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
몸이 구부정한 여인들이 수많은 여인들이 저 뒤에서 기어 다니고 있다. 난 그들이 싫다.
남편이 하루 빨리 날 여기서 빼어 내줬으면!
난 때때로 달빛도 싫다. 이 창문으로 또 저 창문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오는 달빛이.
어젯밤에도 그랬다. 곤히 잠든 남편을 깨우기 싫어 달빛이 울퉁불퉁한 벽지를 비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있던 희미한 형상들이 벽 무늬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확인하러 일어나 벽지를 만져보고 돌아오는데, 남편이 깨어 "What is it, little girl?" 걱정해주는 것 아닌가?
"Don't go walking about like that—you'll get cold."
그래서 이때가 기회다 하고 날 여기에서 빼어내 달라고 부탁했더니, "Why darling!" 하면서,
아직 여기 계약이 3주나 남았고, 집은 아직 수리 중이고.... 또 더구나
"당신이 위험하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의사로서 판단하기에 당신 혈색도 돌아오고 몸도 불어나고 이렇게 좋아지고 있는데....."
글쎄 이러는 것 아닌가. 그래, 난, 그건 당신이 몰라서 하는 얘기고, 실제로는 당신 없을 때는 거의 먹지도 않는다고 실토했더니,
"Bless her little heart! 낮을 위해서는 지금 자두는 것이 훨씬 좋아.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하면서,
그냥 다시 잠에 빠지는 것 아닌가.
난 곰곰이 생각을 계속했다. 벽 무늬 앞의 패턴과 뒤의 패턴이 동시에 움직였는지 아니면 따로따로 움직였는지.
나 이외의 그 누구도 모르는 점 또 하나는 이 패턴이 빛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오랜 시간 아침 낮 저녁 밤에 관찰 후 알아낸 또 하나의 사실, 앞에 있는 무늬는 철창이고 뒤에 있는 무늬는 여인들이라는 것.
내게 잠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남편, 이제는 식사 후마다 나를 눕게 한다. 물론 그가 믿듯이 내 잠드는 법은 없고.
And that cultivates deceit, for I don't tell them I'm awake—O no!
그러다보니 남편이 서서히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남편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하고, 제니도 마찬가지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일종의 과학적 가설이라고나 할까, 움직이는 것은 패턴이 아니라 벽지 그 자체!
그리고 또 확인한 사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남편도 벽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한다는 것. 그것도 몇 번씩이나.
어느 날 보니 제니도 마찬가지였다. 곁에 서있는 나를 보자 그녀는 몰래 무슨 일하다 들킨 사람 모양으로 화를 내며 말하더라.
이 벽지가 하도 낡아 아무데나 묻는다고. 옷에 노랑이 묻곤 하니, 제발 신경 좀 써달라고.
말을 딴 데로 돌렸지만, 난 안다. 그녀도 패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난 결심했다. 이 벽지의 비밀을 내가 먼저 알아내리라고.
목표의식이 생기면 사람이 달라지는 법. 난 이제 식사도 잘하고 좀 더 말을 아낀다.
남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얘기하더라. 벽지에도 ‘불구하고’ 내가 활짝 피고 있다고.
벽지‘때문’이라고 대답하려다 참았다. 그러면 이상하게 생각해 날 데려갈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벽지의 비밀을 알아내는데 이제 한 주일의 시간밖에 없는데,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밤에는 벽지를 살펴보느라 눈 제대로 못 붙이지만, 낮에는 피곤하고 혼란한 상태로 잠들곤 한다.
곰팡이는 계속 새로 생겨나고 그 위로 노란 색조가 번져나가곤 한다. 버터조각처럼 예쁜 게 아니라 고약하게 부패한 누렁덩이로.
어휴 그 냄새는. 맑은 날이 계속될 때는 그래도 좀 참을 만 했는데, 궂은 날만 계속되다보니 집안 전체가 고약한 냄새로 가득하다.
식당, 거실, 홀은 말할 것도 없고, 계단에 또 내 머리에. 밤에 자다 일어나 보면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다.
집에 불을 지르면 이 냄새가 없어지겠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알게 된 사실, 이 냄새에도 색깔이 있다. A yellow smell!
끈질긴 관찰 끝에 드디어 알아냈다. The front pattern DOES move—and no wonder! The woman behind shakes it!
어떤 때는 수많은 여인들이, 어떤 때는 혼자서 바쁘게 기어 다니며 흔들어댄다. 밝은 곳에서는 가만히 있다가 어두운 곳에서.
And she is all the time trying to climb through. But nobody could climb through that pattern—it strangles so;
I think that is why it has so many heads.
They get through, and then the pattern strangles them off and turns them upside down, and makes their eyes white!
If those heads were covered or taken off it would not be half so bad.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여인들은 낮에 기어 나온다. 내가 직접 보기도 했다. 창문 곳곳 그들의 모습을.
난 안다. 이 여자가 낮에 기어 다니는 그 여자라는 것을. 대부분의 여자는 낮에 기어 다니는 그런 짓을 않거든.
난 그 여자가 나무 밑으로 기어 다니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체 했다. 대낮에 기어 다니는 모습을 들켜 너무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
난 낮에 기어 다닐 때는 방문을 걸어 잠근다. 밤에는 내 그럴 수 없다. 남편이 눈치 챌 것이기에.
남편은 이제 아주 이상해졌다.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난 때로 그 여인이 밖으로 나가 흘러가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빠르게 기어가는 것도 본다.
이들을 한꺼번에 풀어줄 방법은 없을까? 있다. 내개 생각이 있다. 하지만 난 내 비밀을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이제 남은 날은 단 이틀. 남편이 눈치를 챈 모양이다. 나를 보는 그의 눈빛이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남편이 제니에게 묻는다. 밤새 내 숨소리가 워낙 고르니 의심이 간 모양이다. 내가 낮에 잠을 많이 잔다는 제니의 대답.
그리고 또 뭐 많이 묻는다. 마치 날 끔찍이도 사랑하는 양. 그 속을 내 들여다볼 수 있다면!
만세! 드디어 마지막 날. 거기다 남편은 일이 있어 오늘 밤엔 여기로 못 돌아오니, 시간은 충분하다.
제니가 내 방에서 같이 자겠단다. 교활한 것! 난 혼자 자는 것이 편하다고 그녀를 물리친다.
드디어, 달이 뜨자, 그 여인이 기어 다니며 패턴을 흔들기 시작했고, 난 도와주러 달려갔다.
그 여자는 흔들고, 난 당기고, 그렇게 우리는 새벽이 오기 전에 엄청난 길이의 벽지를 뜯어냈다.
방을 빙 돌아가며 내 키의 한 배 반 높이로.
해가 뜨자, 그 끔찍했던 패턴들이 날 보고 웃기 시작했다. 좋다. 오늘이 다 가기 전 내 이 일을 마치리라!
우리가 내일 이 집을 뜨면 사람들은 여기 있던 가구들을 아래층 본래 위치로 내려갈 것 아닌가.
제니가 놀란 얼굴로 벽을 쳐다보기에, 내가 다 해냈다고 쾌활하게 이야기해줬더니,
웃으면서,
피곤 할 텐데, 자기가 할 걸,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그 속마음을 내가 모르랴.
나를 밖으로 끌어내려 하기에, 이제 여기가 텅 비었고 조용하니 여기서 자겠다고,
저녁이 되어도 날 깨우지 말라고 얘기해줬다.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방, 남은 것은 천으로 된 매트리스 하나 덜렁 놓인 침대뿐.
I quite enjoy the room, now it is bare again.
How those children did tear about here!
This bedstead is fairly gnawed!
But I must get to work.
방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열쇠를 앞 길 쪽으로 던져버렸다.
난 이제 밖으로 안 나간다. 남편이 올 때까지는 누구도 들이고 싶지 않다. 그를 놀라게 하고 싶다.
침대를 옮기며 작업하려했지만, 이 침대는 밑에 못이 박혀 고정돼있다. 할 수 없이 손이 닿는 데까지 만이라도 뜯어내려는데,
It sticks horribly and the pattern just enjoys it! All those strangled heads and bulbous eyes and waddling fungus growths just shriek with derision!
화가 나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생각도 해봤지만, 단단히 박힌 철창에 포기.
그리고 또, 창밖에는 그 여인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 여인들도 모두 나처럼 벽지를 뜯고 나왔을까?
하지만 난 지금 내 몸을 이렇게 단단히 로프로 묶어놨으니 밖에서 아무리 날 끌어내려 해도 절대로 떨어지지 않지!
어쨌든 난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 제니가 불러내려 해도 말이야.
이렇게 넓은 방에서 마음껏 기어 다닐 수 있으니 좋기는 좋다.
밖에 나가면 바닥을 기어야하는데 다 초록색이잖아, 노랑이 아니고.
더구나 여기선 아무리 어깨를 부딪치며 기어 다녀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잖아.
저런! 남편이 왔네!
여보게, 아무리 그래도 소용이 없지. 그 문은 안 열려. 저런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두들겨대다니.
도끼를 찾네. 이렇게 아름다운 문을 부순다는 건 수치지. 할 수 없지.
알려줄 밖에. “여보, 열쇠는 저 앞 파초 밑에 있어요.”
문을 열어달라고 사정하는 남편, 그럴 수 없다는 나. 열쇠 있는 곳까지 알려줬는데.
몇 번 같은 사이클이 반복된 후, 문을 열고 들어선 남편,
"What is the matter?" he cried. "For God's sake, what are you doing!"
난 기어 다니기를 계속하며 어깨위로 고개를 들어 남편을 쳐다보며 외친다.
난 나왔어! 드디어! 당신과 제니가(원본에는 Jane으로 되어 있는데, 오타가 아니라 무슨 자체의 의미가 있다는 해설도 있고...) 막았어도 벽지를 다 뜯어냈어. 이제 날 다시 그 안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어!
그런데 이 사람 기절할 건 또 뭐람. 어쨌든 남편은 내가 기어가는 코스를 막고 쓰러졌고, 그래서 난 매번 그를 넘어서 기어간다!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톤 체호프의 ‘거울’ (0) | 2013.06.10 |
---|---|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0) | 2013.06.06 |
Edward Peple의 ‘Semiramis, A Tale of Battle and of Love’ (0) | 2013.06.01 |
Julian Barnes의 ‘The Sense of an Ending’ (0) | 2013.05.30 |
동화 한 편 (0) | 2013.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