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식 책 요약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뚝틀이 2015. 12. 26. 15:27

Friedrich Nietzsche(1844-1900),

Also sprach Zarathustra: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 1885

 

 

제1부

차라투스트라가 나이 서른이 되자,

고향과 호수를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 맑은 정신으로 고독을 즐기며 10년 동안 지내다,

어느 날,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에게 말합니다.

   너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햇살을 비추어주는 것 아니던가.

   넌 지난 10년간 나의 동굴을 비추어 주었다.

   나의 지혜와 용맹을 보는 기쁨이 네게 없었더라면?

   이제 난 지혜를 너무 많이 쌓았다. 흘러넘치도록 많이. 이 지혜를 현자들에게 나누어 주련다.

   이제 나는 지는 해처럼 인간이 되려고 한다.

 

그가 산에서 내려오다 숲속의 성자를 만납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러간다고 하자, 그가 경고합니다.

   설령 보물을 준다 해도, 그들은 의심하고, 그것이 선물이라고 믿지도 않을 것이에요.

   그들에게 무엇을 주려하는 대신에 그들의 짐을 덜어주세요.

   인간들을 사랑하다간 파멸을 맞을 것이니,

   차라리 숲속에서 곰 가운데 곰 새 가운데 새로 있는 것이 나을 것이요.

 

차라투스트라가 그에게 묻습니다. 숲속에서 무엇을 하느냐고요.

자기는 이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접고 신만을 사랑한다며, 노래를 지어 부르며 신을 찬양한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그를 떠나 내려오며 혼잣말을 합니다. 도대체 이 늙은 성자는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단 말인가?

 

차라투스트라가 내려와 시장으로 향합니다.

사람들이 몰려, 이제 곧 시작 될 광대의 줄타기 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가 이 군중을 향해 외칩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위버멘쉬Übermensch를 가르치노라.

   (‘Übermensch’는 이 책에서의 중심개념으로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 개념이지만,

     스스로 방향 제시하고 가꾸고 극복해나가는, 스스로의 주인인 존재를 의미하며,

     Overman, Superman, Superhuman, Overhuman, 초인 등으로 번역됩니다.

     여기선 원어 그대로 위버멘쉬로 하는데, 우리 발음으로는 불편함을 고려,

     이하, 위버멘쉬는 위맨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차투로 줄여 표기합니다.

     인간()의 수준 그 의 어떤 존재 그런 의미로 이해해도 되겠죠?)

 

    그대들은 벌레 수준에서 인간에게로 도달하는 길을 걸어왔으면서도, 아직 내면세계에는 많은 것들이 여전히 벌레인 채로 남아있다.

    그대들은 원숭이를 보며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습다고?

    일찍이 원숭이였던 그대들, 아직 여전히 원숭이노라. 현자賢者들조차도, 육과 영의 잡종인 존재일 뿐이다.

    우리의 조상은 무엇인가를 창조해내려 애써왔다.

    그런데, 그대들은 인간임을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오히려, 동물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니던가?

    인간이란 동물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이다. 심연을 건너지르는 밧줄.

       Der Mensch ist ein Seil, geknüpft zwischen Tier und Übermensch - ein Seil über einem Abgrunde.

    이제 내가 그대들에게 위맨을 가르치노라!

 

    인간이란 넘어서야 할 그 무엇이다.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그 건너가는 길은 험난하고 위험하다.

    위맨은 '대지'의 뜻이다. '이 세상'에 충실해라.

    이성, 미덕, 정의, 연민, 그런 것을 다 버려야한다.

    천상의 희망을 말하는 자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독을 품은 자들이다.

    그들은 육체가 야위고 처참하게 굶주리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있어서 영혼의 기쁨이란 잔인함 그 자체다.

    사람들은 마치 사육되는 동물처럼 길들여져서,

    이제는 위험하거나 극단적인 것을 두려워하게 되어,

    단순쾌락에 젖어, 하나같이 평범하게 똑같아져,

    이러다간 ‘마지막 인간’만 남을 것이다.

    일찍이 신에 대한 모독이 가장 큰 죄악이었지만, 이제 신은 죽었다. 따라서 신성모독도 죽었다.

       Einst war der Frevel an Gott der größte Frevel, aber Gott starb, und damit starben auch diese Frevelhaften.

 

사람들은 차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광대 같은 소리 집어치우고, ‘마지막 인간’이나 보여 달라 외칩니다.

광대가 이 외침에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높은 건물 사이로 줄을 타기 시작합니다.

어릿광대가 그의 뒤를 따르며 서투르다느니 너무 천천히 간다느니 놀려대다,

그를 펄쩍 뛰어넘자, 줄타기 광대가 균형을 잃고 땅으로 떨어집니다.

차투가 그 죽어가는 사람에게 다가가, 악마도 지옥도 없으니 편하게 가라고 위로하자,

그가 자기는 동물처럼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았다며 탄식합니다.

차투가 말합니다. 스스로 위험한 것을 직업으로 택했던 삶, 거기엔 경멸할 것이 없다고요.

      Du hast aus der Gefahr deinen Beruf gemacht, daran ist nichts zu verachten.

 

그 광대를 묻어주러 등에 메고 성을 나서는데, 어릿광대가 차투를 따라와 빨리 떠나가라고 합니다.

    선하고 정의로운 자,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 그들 모두가 당신을 증오한다고요.

    나머지 사람들도 아직 당신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기에 가만있을 뿐이라고요.

 

성 밖으로 나온 차투는, 군중을 움직일 수 없었다는데 슬픔을 느끼고,

이제부터는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오려는 사람들만 가르치기로 결심합니다.

(이제까지는 ‘이야기’였는데, 이 지금부터는 각 테마 별 ‘웅변’이요 ‘시’입니다.)

 

* * * * *

 

세 가지 변화의 모습에 관하여 Von den drei Verwandlungen

    위맨에 이르는 데는 세 가지 변화의 단계가 있다. 낙타, 사자, 어린이.

    낙타의 단계에서는 안락함을 포기, 자신을 훈련, 난관을 받아들이고, 지식과 힘을 쌓고,

    사자의 단계에서는 자신의 독립성을 확인, 사회적 전통에 대해 노no라고 할 수 있게 되고,

    그 바탕 위에, 어린이처럼 오직 진실만을 찾아, 종교가 요구하는 도덕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도덕을 얻을 수 있다.

 

덕에 대한 가르침에 관하여 Von den Lehrstühlen der Tugend

    차투가 어떤 현자가 가르치는 현장을 찾는데,

    그가 잠을 잘 자는 것이 조용히 양심을 찾는 미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차투는 그런 생각과는 달리, 내적평화를 얻기 위한 절제는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내적평화란 결국 잠을 자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발전을 위한 투쟁과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삶이란 우리가 극복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내세론자에 대하여 Von den Hinterweltlern

    차투가 육을 경멸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강하게 반박합니다.

        우리는 영이 아닌 육으로 구성되어있다.

        육체적 욕구가 우리의 가치와 욕망을 정한다.

        몸이 아프거나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사람들, 그들은 영적인 것을 주장하고,

        신이니 내세니 하는 말들을 하면서, 이생의 고통으로부터 관심을 돌리려한다.

 

육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관하여 Von den Verächtern des Leibes

    우리가 ‘우리자신’이라고 할 때는 몸을 의미하고,

    여기에 모든 이성과 정신과 감각이 있어, 우리를 열정과 사고로 이끈다.

    ‘자신’을 영적이라 주장하며, 육신을 경멸하라고 가르치는 자, 그들은 삶을 증오하거나 죽기를 원하는 자들이다.

 

희열과 열정에 관하여 Von den Freuden- und Leidenschaften

    우리는 고통과 강렬한 느낌의 순간, 배우고, 성숙하고, 독특하게 된다.

    분노와 증오, 그것조차 우리의 힘이 된다.

    진한 열정에 휩싸이는 사람은 큰 내적고통을 겪게 되고, 그것이야말로 덕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창백한 범죄자에 관하여 Vom bleichen Verbrecher

    자신의 죄를 고백한 범죄자가 있다.

    판사는 그가 도적질을 하다가 살인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피를 보려고 살인을 하다가 도적질도 한 것이다.

    그가 창백해진 것은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 역겨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죄는 자신이 허약해져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는 그 죄를 통해서 자신이 약한 것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그 점에서 그는, 도덕관이나 종교적 생각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는 판사보다 나은 것이다.

 

읽기와 쓰기에 관하여 Vom Lesen und Schreiben

    나는 피로 쓴 글만 읽기를 좋아한다.

    피로 쓰는 작가는 독자에 대한 생각을 접어둔다.

    사람들이 한때는 신을 위해, 그 후에는 사람을 위해 글을 썼지만, 이제는 인기를 위해 글을 쓴다.

    인기 있는 글이란 대중을 위해 수준을 낮춘 결과물인데, 그렇게 되면, 작가가 원래 원했던 고상한 뜻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가치 있는 문장은 독자를 한층 더 높은 레벨로 끌어올린다.

 

산상의 나무에 관하여 Vom Baum am Berge

    차투가 제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제자는 자신 속의 공포감이 살아날까 두려워합니다.

    차투가 나무에 비유해 그를 가르칩니다.

        사람이 나무를 흔들 수 없지만, 보이지 않는 바람은 그럴 수 있다.

        나무는 하늘을 향하지만, 어둡고 컴컴한 땅 속으로 뿌리를 뻗어나간다.

    차투가 이어 시기심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시기심은 자신을 왜소하게 느끼게 하고, 도전 용기를 죽인다.

        독립을 얻으려고 싸우다 자신이 고립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여,

        사람들이 경멸하고, 또 스스로 자기 경멸에 빠지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지어다.

 

죽음의 설교자들에 관하여 Von den Predigern des Todes

    영생을 설교하는 자들은 삶은 고통이니 내생을 생각하며 견뎌야한다고 한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요, 죽음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삶을 포옹하라, 삶의 모든 면을 받아들여라.

 

전쟁과 전사에 관하여 Vom Krieg und Kriegsvolke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더 높은 존재로 올라가기를 원한다.

    자기 가슴 속에 이는 시기와 증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전사戰士들이 자기보다 더 높이 올라간 사람들에 대해 느끼듯 말이다.

    이것은 전쟁과 같은 것으로, 휴머니티를 위해서,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다.

 

새로운 우상에 관하여 Vom neuen Götzen

    어느 새 국가라는 것이 새로운 우상이 되어, 대중들이 국가를 경배하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고귀한 것은, 백성이지 국가가 아니다.

    백성은 삶을 위해 노력하지만, 국가는 그들을 전쟁에 내보내 죽게 한다.

    종교, 국수주의, 민주주의, 이들은 모두 다 강하지 못한 사람들의 도피구이다.

    이들은 구성원 모두가 다, 균일해지고, 평범해지고, 여론에 영합할 것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지치고 약하고 병든 자들이 그런 자신들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집단운동일 뿐이다.

    진정한 자유는 국가가 제한하는 그 외부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위맨은 국가가 아니라 자신에 충실한 사람이다.

 

시장의 파리 떼에 관하여 Von den Fliegen des Marktes

    시장은 여러 가지 의견들이 교환되는 장소다.

    자신의 의견과 이상을 열정적으로 토로하며 군중을 휘어잡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단지 정치가나 지성인 등 쇼맨일 뿐이다.

    대중에 영합하는 사람들이 명성과 인기를 얻고 있지만, 실제의 변화와 영향력은 위맨과 창조자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의견을 구하기 위해 시장에 나오는 것은 무의미하다.

    가르침을 따라다니는 존재는 파리와 같은 것,

    진정한 깨달음은 고독 속에서 홀로 생각할 때 나온다.

    그와 같은 창조성은 ‘왁자지껄 무리’로부터 떨어지기를 요구한다.

 

순결에 관하여 Von der Keuschheit

    누구에게는 순결이 좋은 것이고, 누구에게는 나쁜 것일 수도 있다.

    육체는 그 자신을 위해 쾌락과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하루 종일 성에 탐닉하는 것은 비생산적이지만,

    순결을 유지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무작정 욕망을 누르려고만 하면, 오히려 영혼이 더 상할 수도 있다.

 

친구에 관하여 Vom Freunde

    친구들은 서로 위맨을 목표로 앞으로 가도록 격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기와 질투를 통해 더 높은 깨달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수많은 투쟁도 그것을 겪어나가는 과정에서 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여자는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친구가 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천 하고도 한 개의 목표에 관하여 Von tausend und Einem Ziele

    여러 문명과 문화를 보며 느낀 것 중 하나는,

    그들에게는 서로 다른 가치관이 있고, 선과 악의 개념도 다르다는 것.

    어떤 문화권에서 커다란 난관을 극복하고, 자기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어렵게 얻었을 때, 그것을 고귀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어떤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이고, 선의 개념은 한 '무리'가 노력을 많이 한 경우에 더 강하게 표출된다.

    이제는 '무리단위'의 가치관을 떨쳐버리고, 위맨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

    한 무리에는 천 개의 문화와 천 개의 목표가 있지만, 위맨에게는 그 다음의 목표가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궁극적인 목표다.

 

이웃 사랑에 관하여 Von der Nächstenliebe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있다.

    정말? 이웃보다는 자신을 사랑해야한다.

    자신의 성스러움을 사랑하지 않으면, 위맨이 될 수가 없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사랑을 통해 그들이 그 대가로 자기를 사랑해주기 바라는데, 그런 이웃사랑은 경멸스러운 것이다.

    위맨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사랑하도록 하라. 그 이외의 사랑은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뿐이다.

 

창조하는 자의 길에 관하여 Vom Wege des Schaffenden

    누구나 위맨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자유라는 것은 그 자유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과정에 필연적인 외로움을 견딜 수가 없다.

    고독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험이고, 고독이라는 것에는 적이 많은데,

    세상의 관습을 떠난다고 해도 그의 내면에는 군중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래서 군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생기며, 마음 한구석에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별이 되려면 자신이 빛을 내야 한다.

    이런 죄의식을 극복하고, 자신의 자유와 자신의 법칙만을 따르게 될 때 그때 위맨이 되는 것이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 Von alten und jungen Weiblein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어린이 같고, 즐기기 위해 여자들을 필요로 하는데,

    여자는 그 깊고 강한 욕망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여자의 위대한 덕성은, 강하고 고귀한 남자에게 사랑을 쏟는 것인데, 그 사랑은 자기희생적이고 경외하는 자세라야 한다.

    남자는 여자를 즐기지만 또 무서워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여자가 남편에 복종하게 되고, 남자는 여자의 진정한 욕망을 채워줄 수 있다.

 

독사에게 물린 상처에 대하여 Vom Biss der Natter

    차투가 무화과나무 밑에서 자는 데 독사가 그의 목을 뭅니다.

    그가 깨어나 독사의 눈을 들여다보니, 독사가 도망가지 못합니다.

    차투가 그를 잡으니, 독사가 자기 독에 사람이 죽는다고 하는데, 그는 용은 죽이지 못한다며 독을 다시 가져가라고 합니다.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잘못 대접을 받았다면 그것을 안에 쌓아두는 것보다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 적당한 복수를 통해, 그 화를 푸는 것이 더 낫다.

        잘못한 사람을 잘한 것으로 만드는 것, 세상의 악은 그것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자식과 결혼에 대하여 Von Kind und Ehe

    차투가 결혼하려는 제자에게 묻습니다.

        결혼할 자격이 있는가?

        어떤 이들은 외로워, 필요해서, 동물적 본능으로 배우자를 구하는데,

        그것은 자신을 자신의 욕구와 동물적 본능의 먹이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그런 결혼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게 되고, 둘은 서로에게 짐이 될 뿐이다.

        외로움을 달래려 결혼한다면 그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만 낳을 뿐,

        올바른 사랑은 두 사람 다 좀 더 고양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을 때 그때 가능하다.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Vom freien Tode

    죽는 시점을 올바르게 택한다는 것은 예술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이 너무 오래 삶에 매달리는데, 어떤 이는 충분히 오래 살지를 못한다.

    ‘자유로운 죽음’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죽음으로 플라톤이라는 후계자를 만들었고, 용감한 죽음을 택함으로써 추종자들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

 

선사하는 덕에 대하여 Von der schenkenden Tugend

    차투가 이제 모틀리 카우Motley Cow를 떠날 때가 되어, 제자들과 산책에 나섰다가 혼자 걷겠다고 하자,

    제자들이 그에게 지팡이를 선물합니다. 그가 흡족해하며, 가르침을 줍니다.

        내가 위맨을 추구하라 하는 것은 금을 찾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금은 귀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데, 위맨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것을 자만이라 부르지 마라. 이기적 생각의 자만은 아니다.

        남들도 위맨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위맨은 의사처럼 다른 사람의 건강을 생각해야한다.

        땅을 사랑하라, 세상을 위하라.

    이어, 그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이제 내가 너희를 떠날 때가 되었다.

        잊지 마라. 나를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위맨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제 신은 죽었으니, 살기 위해서는, 위맨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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