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식 책 요약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

뚝틀이 2015. 12. 22. 03:10

栗良平(1954-), 一杯のかけそば 1989


 

해마다 섣달 그믐이 되면 우동 집으로서는 일 년 중 제일 바쁜 날입니다.

‘북해정北海亭’도 이날만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쁩니다.

사람은 좋지만 무뚝뚝하기만 주인, 단골손님들은 오히려 그의 부인을 ‘주인아줌마’라 부릅니다.

밤 10시, 손님이 뜸해지자, 여주인이 그날 임시로 일했던 사람들에게 특별상여금을 주고, 또 집에서 들라며 국수까지 들려 돌려보냅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이제 슬슬 가게문을 닫을까 하는데, 한 여인이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섭니다.

여인은 철이 다 지난 반코트차림, 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들은 트레이닝차림입니다.

 

주인이 맞습니다.

  "어서 오세요!"

여인이 머뭇머뭇하며 떠듬떠듬 말합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두 아이들이 그 뒤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습니다.

여주인이 그들을 난로 곁 2번 테이블로 안내하고, 주방 안을 향해 소리칩니다.

   "우동 1인분!"

주문을 받은 주인이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고, 우동 한 덩어리에 반 덩어리를 더 잘라 냄비에 넣습니다.

 

그릇가득 담긴 우동을 가운데 놓고, 세 사람이 속삭이는데, 카운터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형이 "맛있네요." 하고, 동생이 "엄마도 잡수세요."하며, 한 가닥을 집어 어머니 입에 넣어줍니다.

어머니와 아들 둘이 150엔을 내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며 머리를 숙이고 나가고, 이에 주인내외는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목청을 돋아 인사합니다.

 

북해정의 바쁜 나날, 또 한 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습니다.

이날 역시 몹시 바쁜 하루를 끝내고, 10시를 넘겨 막 가게를 닫으려 할 즈음,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한 여인이 두 사람의 남자아이를 데리고 들어옵니다.

여인의 체크무늬 반코트, 여주인은 이들이 일 년 전 섣달 그믐날의 마지막 그 손님임을 알아봅니다.

   "저∙∙∙∙ 우동∙∙∙∙ 일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여주인은 작년과 같은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우동 일인분!"

하고 커다랗게 소리치고, 주인은

   "네엣! 우동 일인분"

하며, 막 꺼버린 화덕에 다시 불을 붙이더니, 부인을 불러,

   "저 여보, 서비스로 3인분 내줍시다."

귀엣말을 하자, 부인이

   "안 돼요, 그러면 오히려 거북하게 여길 거예요."

하고, 주인이 둥근 우동 하나에 반을 더 넣고 삶습니다.

한 그릇 우동을 놓고 하는 세 사람의 얘기가 카운터 안과 밖 부부에게 들려옵니다.

   "아, 맛있어요."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인 내외가 150엔을 지불하고 나가는 이 세 사람을 그날 수 십 번 되풀이했던 인사로 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다음 해 섣달 그믐날,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북해정의 주인내외는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을 모릅니다.

종업원을 귀가 시킨 주인이 벽에 붙은 메뉴판을 뒤집습니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있던 메뉴표가 다시 150엔으로 둔갑합니다.

2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있습니다.

10시 반이 되자, 마치 가게 안에 손님이 다 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기나 한 것처럼, 세 사람이 들어옵니다.

형은 중학생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었던 잠바를 헐렁하게 입고 있습니다.

아이들 엄마의 체크무늬 반코트는 색이 많이 바랬습니다.

   "어서 오세요!"

라고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여주인에게, 엄마가 조심조심 묻습니다.

   "저∙∙∙∙ 우동∙∙∙∙ 2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네! 어서어서∙∙∙∙ 자 이쪽으로 오시죠."

여주인이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며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칩니다.

   "우동 2인분요!"

주인이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뜨거운 국물 속에 던져 넣습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모자, 그들의 밝은 목소리에서 활력이 느껴집니다.

   "형아야, 그리고 준이야. 오늘은 엄마가 너희 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여덟 명이나 부상을 입었잖니?

    실은, 보험으로도 지불할 수 없었던 돈을 매월 5만 엔씩 계속 지불하고 있었단다."

   "음∙∙∙∙. 우리도 알고 있었어요. 엄마."

주인내외가 꼼짝 않고 가만히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년 3월까지로 되어 있었던 것을 오늘 전부 지불했단다.

    형아 네가 신문배달을 해주고, 준이 네가 장보기랑 저녁준비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지.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해서 오늘 특별수당을 받았고, 그것으로 지불을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식사준비는 내가 할 거에요."

   "나도 신문배달, 계속할래요. 준아! 우리 힘 내자!"

 

​형아가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냅니다. 그동안 엄마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었다고요.

동생이 쓴 <우동 한 그릇>이라는 글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서 준이가 자기 글을 읽게 되었는데,

11월 첫째 일요일, 학교에서 엄마에게 와주십사 편지를 보냈는데, 자기가 엄마에게는 알리지 않고 대신 갔었다고요.

그러면서 그날의 발표작문을 이제야 비로소 읽어드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빚을 많이 남기셨다.

    그 때문에 엄마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하시고, 형도 조간에 또 석간에 신문배달을 하고 있다.

    12월 31일 밤, 셋이서 우동을 한 그릇만 시켜먹었다. 참 맛있었다.

    한 그릇만 시켰는데도, 주인 부부가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쳐주셨다.

    그런데, 내 귀엔 그 목소리가 '지지마! 힘내! 잘 살 수 있어!‘로 들렸다.

    그래서 나도 어른이 되면 ‘힘내라! 행복해라!’라는 속마음을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우동 집 주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카운터 안쪽에 있던 주인과 여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깊숙이 웅크리고 앉은 두 사람이 수건 끝을 마주 잡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작문읽기가 끝나자 선생님이, 어머니를 대신해서 형이 왔으니, 인사말도 어머니 대신하라고 했답니다.

너무 당황해,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지만, 그래도 나섰답니다.

   "방금 동생이 글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그가 언짢게 생각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당당하게 읽어 내려가는 동생을 보며, 그것을 부끄럽다고 여기는 내 마음이 오히려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깨달았습니다.

    또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 그 진정한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형제가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날 밤의 광경입니다.

세 사람이, 300엔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깊이깊이 머리를 숙이며나가는데, 

주인과 여주인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를 보냅합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시 또 한 해가 지나고, 북해정 2번 테이블위에 <예약석> 팻말이 붙습니다.

하지만, 그 세 모자는 결국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음 해에도, 그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리지만, 세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제 이 북해정은 내부수리를 하며 테이블이랑 의자를 다 바꾸었지만, 2번 테이블 만은 그대로 남겨둡니다.

 

낡은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있는 이 이상한 배치, 때로는 손님들이 의아해하며 그 이유를 묻곤 하고,

그때마다 주인과 여주인은 그 손님들에게 <우동 한 그릇> 이야기를 들려주곤 합니다.

언젠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다시 오면 이 테이블에 앉히려 한다고요.

이 '행복 테이블'의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나갑니다.

그 테이블이 비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주문하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아주 멀리서부터 찾아왔다는 여학생도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해 섣달그믐.

몇 해 전부터 북해정에 새로운 관습이 하나 생겼습니다.

가족처럼 지내는 이웃과 상인들이 이곳 한자리에 모여,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듣는 것이죠.

오늘도 30여명이 술이랑 안주를 들고 모여와 떠들썩한 분위기입니다.

물론 그들 모두 이 2번 테이블의 유래를 알고 있습니다.

다들, 머릿속으로는 올해도 이 테이블이 그냥 빈 채로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은 비워둔 채, 조금씩 좁혀 앉아가며 동료들을 맞이합니다.

먹는 사람에. 마시는 사람에, 떠드는 사람에, 카운터 안에서 돕는 사람에... 북해정은 왁자지껄합니다.

소란이 절정에 달한 10시 반이 지나는데, 식당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겨울 코트를 손에 든 정장차림 두 청년이 들어옵니다.

여주인이 그들에게 다가가 죄송하다는 얼굴로,

   "공교롭게도 지금 만원이라서∙∙∙∙"

라며 거절하려고 하는데, 기모노를 입은 부인이 두 청년 사이에 서면서 깊이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묻습니다.

   "저∙∙∙∙ 우동∙∙∙∙ 3인분∙∙∙∙괜찮겠죠?"

 

여주인의 안색이 변하고, 카운터 안에서 있던 주인도 눈을 크게 뜹니다.

십 수 년 전 그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에 서있는 이 세 사람과 겹쳐집니다.

여주인과 남편이 이들을 번갈아 보며 당황해하는데, 청년 중 하나가 말합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그믐날 밤, 셋이서 우동 1인분을 주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용기를 얻어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고, 그 후, 외가가 있는 시가현滋賀県으로 이사했습니다.

    저는 금년, 교토京都대학병원의 의사가 되었는데, 내년 4월부터 삿뽀로札幌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우리 인생 최고의 사치스러운 계획을 세웠습니다.

    섣달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 3인분의 우동을 시키기로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야채가게 주인이 입에 머금고 있던 것을 꿀꺽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를 높입니다.

   "이봐요 주인아줌마! 뭐하고 있어요!

    그 오랜 세월 동안 이날을 위해 준비해둔 예약석이잖아요. 안내를 해요. 안내를!"

여주인이 퍼떡 정신을 차립니다.

   "잘 오셨어요. 자 이쪽 2번 테이블에 앉으세요."

그리고 주방 쪽을 향해 소리칩니다.

   "여보! 우동 3인분!"

무뚝뚝한 얼굴을 눈물로 적신 주인이 큰소리로 받습니다.

   "네엣! 우동 3인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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