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ut Hamsun(1859-1952), Slut, Hunger 1890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름조차 나오지 않죠. 그저 ‘나’로서 이야기를 들려줄 뿐입니다.
그 '나'가 사실은 작가입니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내 직업이요?
글쎄, 직업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아니 ‘글을 써서 먹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죠.
이미 신문사에 기고를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아직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대답만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게는 그것이 ‘위안’이 된답니다. 아직 거절당한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난 다른 일자리도 구해봅니다.
‘빚 문제 해결 회사’에도 알아봤고, 또 소방서에도 지원을 해보지만 번번이 퇴짜만 맞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왜 저 사람들은 다 먹고 살 수 있는 일거리가 있는데, 나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지?
때때로 하나님께 불평합니다.
“왜 저를 실험도구로 삼으시는 거죠? 왜 하필 저죠?”
문뜩문뜩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미래세대의 범죄'에 대하여? 이건 3단짜리 칼럼은 될 텐데∙∙∙∙∙∙∙∙.
아니지, 내가 이따위 글이나 쓰고 있을 수야 없지.
‘철학에서의 인식론’은?
칸트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들 코가 납작해지게?
하지만, 지금 문제는 아주 직접적, 내게는 지금 글을 쓸 연필이 없습니다.
전당포에 외투를 맡길 때 주머니 속에 들은 연필 꺼내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죠.
지난 번 그 편집인이 이야기해주던 것이 생각나네요.
‘좀 더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고요.
물론 그건 정중한 거절의 표현일 뿐이었죠.
* * * * *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 정육점이 있습니다.
거기 걸려있는 소시지들을 보면 군침이 돕니다.
그럴 땐 난 그 집 여주인의 뻐드렁니를 쳐다보곤 합니다. 그러면 식욕이 금방 사라지거든요.
내 방에는 양초가 없습니다. 그것응 살 돈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난 담요를 챙겨 공원 가로등 밑으로 가, 거기서 내가 쓴 원고를 꺼내 읽어보곤 한답니다.
때로는 아예 숲속으로 들어가 습기와 한기를 견디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때로는 바닷가에 앉아 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다가,
어떤 여인이 나를 이끄는 환상에 빠지며 잠이 들기도 합니다.
굶은 지 벌써 하루 반, 이젠 막 토할 것 같은 고통이 옵니다.
하기야, 사실, 며칠 씩 굶은 적도 있기는 있었죠.
굶주림도 견디기 힘들지만 추위 역시 견디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숲속을 무작정 걷습니다.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걷는 거죠. 발걸음을 빨리하면 더 좋습니다.
한참 걷는데 앞에서 두 아가씨가 걷고 있기에, 난 그들을 앞질러 갑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네요.
갑자기 뒤로 돌아서, 그들에게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입니다.
* * * * *
내 ‘이상한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는 경관이 있습니다.
왜 여기 있느냐 묻기에 열쇠를 잃어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니, 그가 노숙자들 재워주는 곳으로 안내해줍니다.
하지만, 나에게 아직 자존심이라는 것이 남아있어 차마 아침식권은 얻을 생각도 못합니다.
자존심이요? 거기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있네요.
얼마 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시장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군요.
내 동작이 조금이라 빨랐다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날은 어지럽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달려가던 마차에 옷에 걸렸죠. 그 마차에 끌리면서 치었습니다.
신발이 짓이겨지고 피가 흐르고∙∙∙∙∙∙∙∙.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그에게 먹을 것을 달랬다면 틀림없이 기꺼이 주었을 텐데, 자존심 때문에 그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산책길에서 만난 어떤 노인이 우유 좀 마시고 싶다고 합니다. 난 전당포로 달려가 내 외투를 맡깁니다.
또 어떤 거지소녀가 내게 구걸합니다. 이번엔 내가 ‘들고 다니던’ 담요를 들고 갑니다.
그런데 이번엔 전당포 주인이 이런 낡은 것은 받을 수 없다고 하네요.
그래서 내 안경은 어떻겠냐고 물었죠.
아침에 집을 나오는데, 어떤 여자가 문 앞에 서있습니다.
사실, 오늘 뿐이 아니라 3일전부터 거기 서있었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말을 걸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혹시라도 와인 한 잔 같이 마시자고 하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 * * * *
내, 이러다가 정말 완전히 굶어죽는 것 아닐까요?
살 길은 오직 하나 글을 쓰는 것!
이게 무슨 일?
갑자기 내 속에서 무슨 마술지팡이가 돌아가듯, 한 단어에 이어 다른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것들이 문맥에 맞게 연결되고, 논리적으로 착착 정돈되어 갑니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초! 불빛이 있어야 뭘 쓸려도 쓸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혹시 아는 사람이 있으면 1펜스를 빌려 초를 살 수 있을까, 카페에 들어가 두리번거려봅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다시 방으로 들어옵니다.
있는 옷 다 껴입고도 이 추위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마찰열을 이용하여 손이라도 데워보려 머리를 긁어댔더니, 머리카락들이 빠집니다. 흰 가루가 좌르륵 떨어집니다.
너무 배가 고파 뭐라도 씹는 느낌이라도 얻으려 손가락 네 개를 입에 집어넣고 씹어봅니다. 손가락에서 피가 흐릅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그래도 어쨌든, 어쨌든, 지금 초가 있어야하는데∙∙∙∙∙∙∙∙.
난 무조건 가게로 들어가고 봅니다.
점원이 다른 손님 상대하다, 내게 물건을 잔뜩 밀어줍니다.
“난 그냥 양초 하나 사러왔는데∙∙∙∙∙∙∙∙.”
“어쨌든, 당신이 돈을 냈잖아요! ”
그가 거스름돈까지 챙겨줍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돈을 그냥 받아 쥡니다.
지금 내게 제일 급한 것은 뭔가를 입속으로 집어넣는 것. 식당으로 달려가 음식을 시킵니다.
음료수는? 종업원이 묻기에 필요 없다고 합니다.
허겁지겁, 씹지도 않고 그냥 삼켜버립니다.
다시 밖으로 나오자 어지럽습니다.
하도 어지러워∙∙∙∙∙∙∙ 그냥 다 토해버립니다.
아까워 다시 삼키려 애써보지만 더 괴롭습니다. 결국 완전히 다 토해버리고 맙니다.
지나가던 사람의 말해줍니다. 그럴 땐 뜨거운 우유가 좋다고요.
난 눈에 띄는 카페로 들어가 데운 우유 한 잔을 마십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도둑질에 다름없는데, 내 어쩌다 이런 타락의 길을∙∙∙∙∙∙∙∙.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만약에 이것이 발각되면?
경찰이 내 손과 발에 쇠고랑을 채운다면?
아니 쇠고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수갑을 채운다면?
난 그 꺼림칙함을 떨쳐버리려, 주머니에 남아있는 돈 모두 털어 불쌍한 노파에게 쥐어줍니다.
이제야 양심이 다시 좀 깨끗해진 것 같네요.
그래도 그건 아니죠!
난 결국 그 상점으로 다시 돌아가 점원에게 있던 일을 다 이야기해줍니다.
그런데, 이 점원,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입니다.
* * * * *
난 시장에 가 묻습니다. 개한테 주려는데 뼈 하나만 얻을 수 있냐고, 살점이 붙어있지 않아도 상관없다고요.
하나를 얻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서, 불빛이 없는 구석에 앉습니다.
그 뼈를 갉아먹으려 해봅니다.
메스꺼운 냄새를 참을 수 없어, 결국 삼켰던 것까지 다시 토해냅니다.
‘이건 결국 의지의 문제인데∙∙∙∙’
그 뼈를 다시 핥아보지만, 결국 또 다시 토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눈물범벅이 된 그 뼈를 집어던집니다.
‘나의 의지’가 ‘나의 육체’를 향해 외칩니다.
“넌 거절했어! 내가 널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넌 거절했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이 고통!
역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불러 세웁니다.
예전에 전당포에서 봤던 사람입니다.
그가 작은 금화 하나를 내밀며 글을 쓰는데 도움 되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런 거금을? 난 놀란 가슴에 미처 감사하다는 말도 못하고 그를 떠나옵니다.
이제 ‘마음을 잡고’ 글을 써보려 하지만, 내 머릿속은 피폐해진 상태입니다.
그녀가 아직도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곤 합니다.
난 내 주머니에서 짤랑거리는 돈을 만지작거리며, 와인 한 잔 같이 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녀는 그럴 생각은 없다며, 혹시 자기 집에 데려다주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녀와 같이 걸으며, 그녀의 향기와 웃음과 젖가슴을 느낍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내가 지난 번 획 돌아서며 장난쳤던 그 자매 중 동생입니다.
우리는 다음 화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날이 되기도 전에 이미 내 돈은 다 떨어집니다.
그래도 그녀를 만납니다. 어디 적당한데 갈 곳도 없어, 그녀에게 묻습니다.
“이 불쌍한 옷차림의 나와 걷고 있는 당신 모습을 사람들이 본다면 뭐라 할까요?”
그녀가 자기 집으로 가잡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내 이름을 묻지도 않습니다.
그러더니 그녀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일라얄리Ylajali라고요.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내 처지를 있는 그대로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더니, 그녀가 갑자기 쌀쌀해지네요.
나는 그녀에게 항의합니다.
“왜 가만있는 나를 ‘건드려’ 이렇게 불쌍하게 만들어놓는 거죠?”
집 주인의 돈 독촉이 거듭됩니다.
“이제 내 극본 ‘십자가의 계시’만 완성되면 원고료가 들어와∙∙∙∙∙∙∙.”
더 이상의 변명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집 주인이 친절을 베푸네요.
지금 있는 방을 비우고 자기 내외와 아이들이 있는 그 방에 같이 있자고요.
그 말대로 따라가, 방바닥에 엎드려 뭔가 써보려 하지만∙∙∙∙∙∙∙∙.
결국 난 길거리로 쫓겨납니다.
‘가난한 지성인’은 ‘풍족하게 지내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면밀하게 관찰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발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주의 깊게 듣지요.
난 아까 봤습니다. 내가 있던 방을 차지하고 거드름을 피우던 사람을요.
그 사람이 자기가 선원이라고 하더군요.
난 부둣가로 달려갑니다.
마침 러시아 깃발을 단 화물선이 스페인의 까디스Cadiz로 떠난다는 군요.
난 거기에 올라탑니다. 무슨 일이든지 시켜만 달라고 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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