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스마트폰/생각하는 힘

뚝틀이 2016. 1. 29. 00:07
옆에 앉은 사람의 격렬한 팔꿈치 동작, 난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하느라 이 난리인가 보니, 스마트폰으로 무슨 상자 맞추기 게임에 빠져있는 중.
말끔한 옷차림에 나이 지긋한 사람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찌 지하철에서뿐이랴.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요 심지어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도 이런 ‘늙은이’들을 봤다. 많이도 봤다.
한때는 TV를 바보상자라 부르며 경계했는데, 글쎄 스마트폰은 무엇이라 부르면 적당할까.

내 생각은 자연히 이 ‘불쌍한 늙은이’에게서 ‘불쌍한 젊은이들’로 옮아간다.
게임에 문자에 열심히 손가락을 놀려대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몰려오는 서글픔. 
요즘 유행하는 금수저 흙수저 타령, 아무리 노력해도 길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는 그들의 자조 섞인 변.
정말 그럴까? 
‘불쌍한 젊은이’들에게 ‘타이름’은 금기시되어있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묻고 싶다. 
정말 정말로 그럴까?
난 완전히 다른 생각,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한 격변기이고 따라서 그만큼 가능성이 열리는 시대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하나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는 그 때 ‘자기 길’을 찾은 사람들 그들은 누구일까. 

지금은 風前燈火의 시대다. 
全世界의 이야기요 그 속에서의 大韓民國을 말함이다.
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로 투기자본주의로 변해가다, 이제 전 세계가 ‘동시 몰락’ 직전이다.
금수저 흙수저 따위는 ‘새’들의 조잘댐, 사회시스템 자체가 무너지며 세상이 리셋상태로 들어갈 것이다.
일자리 구하기는 정말로 더 어려워질 것이고, ‘낭만’ 따위를 논하는 것은 그야말로 의미가 없는 그런 시대가 온다.
설령 부모로부터 ‘충분히’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다면 곧 ‘거지신세’가 되는 그런 세상을 말함이다.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평소에 체력을 단련해두지 않았다면 제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 그런 상태가 되는데,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키워놨다면 전쟁영웅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찾아온다고 할 수 있듯이
‘생각 준비’를 해두었다면, ‘모두’가 우왕좌왕할 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세상 말이다.

위에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한 격변기이고 그만큼 가능성이...’라고 한 것은
지금의 이 시대 상황에서는 역사상 어느 때와도 다른, 크게 다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권력’은 ‘정보력’과 동의어였고, ‘부의 대물림’은 사실 ‘정보의 대물림’과도 맥을 같이 했다.
귀족은 평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내용의 정보를 갖고 있었고, 그것이 ‘기득권을 누리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차이였다.
따라서 평민이 아무리 ‘당위성’ 그 하나로 권력에 맞서봐야 ‘정보’의 힘 앞에서는 맥을 출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독립 후에도 친일파의 힘이 꺾이지 않고 이어져온 것도 그런 현상이었고,
역사상 수많은 개혁시도가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바로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 덕분이다.
꼭 ‘정보다운 정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이 다 정보다.
영혼을 살찌게 하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思考훈련, 옛 귀족과 왕족들은 그 훈련을 받았다는 점에서 평민과 달랐던 것이다.
세상모습을 큰 틀에서 보며 생각하는 습관, 권력층 자녀들은 부모에게서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물려받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생각해보자. 
귀족의 자녀라고 다른 책을 읽고 다른 음악을 듣고 다른 방법으로 운동하겠는가?
‘내부정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필요한 정보’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곳이 인터넷이다.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이제 그 패러다임 자체가 완전히 변하고 있다.
과거에 옳았다고 계속 옳은 것도 아니고, 과거에 통했던 방법이 앞으로도 통한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인’으로서 버둥거리던 것도 이제는 지난 이야기, 지금은 누구나 ‘세계인’이 되는 것을 강요받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인들이 흔들리는 저 모습을 보라. 기회의 땅? ‘정규직’이라는 것도 사라지고 ‘중산층’이라는 것도 사라지고.....
유럽인들의 모습을 보라. 이상은 이상, 현실은 현실. 민족 간 시기와 갈등, 그것을 극복해보려는 몸부림....
중국과 일본의 저 모습을 보라. ‘얼마 전’까지의 그림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이들의 모습 또 전망...
자, 그 누가 10년 후 우리 모습을 그려줄 수 있겠는가. 하물며 20년 30년 후의 모습이야.

체력을 비유로 가능성을 이야기했지만, 중요한 점 하나가 있는데, 인터넷이 무슨 묘약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비타민’을 먹는다고 몸이 튼튼해지는 것도 아니고, 무슨 영양제’를 먹는다고 고릴라 같은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듯이,
무슨 광고 요란한 ‘얄팍한 책’ 몇 권 골라 읽는다고 거기에서 사고능력이 생기고 생각의 지평이 넓혀지는 것이 아니다.
‘꿰어진 지식’이 아닌 구슬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지만, ‘구슬’도 없이 꿰어진 지식이 생기는 것은 절대 아니다.
틈날 때 마다 ‘마음의 양식’을 섭취하고, 숲속을 산책하며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것 그것만이 길이다.
인터넷을 참조해가며, 인터넷 밖에서 그 기본양식을 섭취하는 것 그것만이 길이다.
그때 비로소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남의 글을 읽으며 그 '정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있고,
또 나의 생각을 남에게 '설득력'있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하고 글을 쓸 능력이 몸에 배게 된다.
격변기에도 평정을 잃지 않고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자신이 키워놓은 내공을 바탕으로 생기는 것이다.

늙어서도 그림 맞추기 게임이나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다가오는 격변에 ‘여유 있게’ 대비해두는 것, 
그것만이 금수저 흙수저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