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 변경을 하러 간다. 공무원 이 아가씨. 내 도장을 보고 또 본다.
종이에 찍어도 보고도장을 돌려가며 들여다보고.... 혹 내 도장에 무슨 이상이 있나?
몇 분 동안 말없이 같은 동작만 반복하던 이 아가씨가 묻는다. 이것 말고 다른 도장은 없냐고.
전에 쓰던 도장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집에 있던 그것을 들고 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는 내 말에 알 듯 모를 듯 묘한 표정.
멈췄던 동작을 몇 번 더 반복하던 이 아가씨, 단호한 표정으로 미안하지만 이 도장은 인감으로 받아줄 수 없단다.
그 이유가 걸작. 자기가 모르는 어려운 漢字라서, 더구나 꼬불꼬불 글씨가 휘어지게 새겨진 도장이라서....
예? 말문이 막힌다.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참는다.
“네가 아니고, 좀 더 배운 사람이 공무원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었다면....?”
옛적 아주 옛적, 동회에 갈 때 담배 한 곽이라도 받아야 일을 해주던 그런 시절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혹시 이 아가씨 뭘 바라고? 설마. 요즘 세상엔 김영란 아줌마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내 친구 딸도 공무원인데... 혹시 그 녀석도 지금 이 아가씨처럼? 설마.
온갖 생각이 흐르는데, 분을 참고 또 참는다.
그녀의 설명. 인감도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완전 얼간이 취급.
테이블을 쾅 치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참고 참느라 힘들다. 뒷골이 당겨오는 것이 느껴진다.
말 없이 그 도장을 다시 달라 손짓하고, 내 앞에 놓인 종이에 누르고 또 눌러 꾹 찍는다.
참 멋진 글자다. 전에 현직에 있을 때 선물 받은 것. (그때는 김영란 법이 없었다.)
그에게 내밀며 말한다. 이렇게 선명한 ‘그림’이 나오면 그러면 인감기능이 되는 것 아니냐고.
이제 또 뭐라고 하면, 그때는 내 漢字사인을 보여주며 그렇다면 이런 것으로 은행거래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으리라.
그래도 또 뭐라고 이유를 대면 그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지. 여기 이 사무실 떠나간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한계에 다다른 인내심, 내 험악해진 표정을 보고 무엇인가 느꼈는지, 이 아가씨 갑자기 상냥해진다.
아무 말 없이 인감증명 원장에 찍고 복사기에 넣고... 뭔가.... 어쨌든 인감변경 절차는 끝났다.
한 10분 15분 정도 지났을까, 밖으로 나오니 다리까지 후들후들 떨린다. 내 이렇게 참아본 적이 없다.
이제 점심 때, 집으로 갈 마음이 없어 시내로 향한다.
앞에 가는 차 ‘여유’가 있다. 뒤따라오는 차는 보이지도 않는지 ‘여유 부리며’ 간다.
여기 이 호반도로는 왕복 2차선이라 추월할 수도 없는 곳. 또 무척이나 길다. 오래 가야 한다.
이럴 때 화가 난다. 남이 자기 차를 추월하면 ‘자존심’이 상하는지....
차 운전하면 그 차 안에 누가 있는지는 보이지도 않고 그저 차만 보이는데 말이다.
‘남 배려’ 개념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 대한민국. 여기뿐이 아니라, 어디서도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참고로. 난 항상 뒤에 차가 오면 옆으로 비켜 그 차를 지나가게 한다. 내 원칙이다.
누가 난폭운전으로 날 화나게 하면 욕을 하는 대신 등급을 매긴다. 내 방법이다.
저 x은 악당1급, 저 x은 2급, 내 누이동생에게 배운 화를 누르는 비법이다.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고 참다가 할 수 없이 경적을 울렸다.
내가 이런 ‘몰상식’한 짓을 한 것은 처음이다. 아니 몇 년 만에 처음이다. 오늘은.....
길 옆 눈에 띄는 음식점에 들어간다. 오랜만에 두부전골이나...
상에 물 컵을 내려놓는데, 손가락을 컵 속 깊은 곳까지 담갔다.
세상에... 아직 이런 집이 있나. 아니 음식점이 아니더라도, 아직 이런 위생관념의 사람이 있나.
가관인 것은 그 다음. 쟁반에 접시를 올려놓는 모습이 거울로 보인다.
경악. 이 사람 재채기를 한다. 재채기야 나올 수도 있는 법. 그런데 고개는 돌리고 해야지..
그쯤해서 그냥 나와야 하는데, 꾹 참는다. 오늘 참 힘들다. 하지만 시비가 붙으면 엄청나게 커질 것 같다.
두부전골을 내온다. 펄펄 끓는 그 속에 숟가락 젓가락을 담가 오래 소독한다.
반찬에 손을 댈 수가 없다. 내 어찌.... 다행히 백반은 뚜껑이 덮여 나와...
인터넷, 스마트폰, 게임, 자동차, 그리고 또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등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강한 면이 많다.
하지만 바로 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음식에서 보듯이 어디를 가나 천편일률적으로....식당문화에 관한 한 한국은 후진국이다.
그래도 서울의 몇몇 곳 가볼만한 데가 있지 않냐고? 천만에. 종류도 제한되고 스타일은 거기에서 거기, 진정한 맛 그 내용이 빈약하고....
그곳들의 공통점은 하나. 우리 여기에 투자 많이 하고 또 임대료 많이 내고 있어요.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저 돈만 듬뿍 내고 가세요.
'공무원 근성'에 다를 바 없는 내가 누군데 심성의 점주들, 다른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모두가 왕 고객들, 눈 가리고 아웅식 위생개념....
대한민국. 나의 대한민국.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는 대한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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