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그날 - o

아름답다와 예쁘다

뚝틀이 2018. 2. 18. 17:42

애들레이드에서 보내오는 LPGA 호주오픈 중계방송.

우리 고진영 선수가 프로무대에 데뷔하는 루키로서 대회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울까가 관심사란다.

한나그린 선수를 응원하는 현지 갤러리들의 함성. 하긴, 호주 땅에서 열리는 대회인데 웬 한국 낭자들이 이리 많은지.

그런데 오늘 유별나게 소란 떠는 듯크게 들리는 이들의 고함소리에 되살아나는 기억이 있다.

내 애들레이드 시절, 잘 가꿔진 이곳 퍼블릭 코스에 몇 번 나갔을 때, 사람들이 보인 노골적 적대감과 비신사적인 행동, 고약한 일을 몇 차례 겪은 후, 그래 너희들 나라다 그래그래, 발길을 끊었던 기억. 사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캠퍼스를 조금만 벗어나면 백인들이 보이는 인종차별적 행동이 거의 당연한 일로 느껴졌지만, 이곳은 그 정도가 심했다. 애들레이드 이 도시는 원래 있던 도시가 확장 발전 된 곳이 아니라, 호주로 이송되어오는 죄수들의 관리를 위해 영국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네덜란드 인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계획도시로 참 잘 짜이고 아름다운 곳. 도심과 주택가를 분리하는 원형으로 둘러싼 공원, 기능적으로 배치된 공공건물과 상가. 하지만, 어느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이 아름다움은 원래 백인들, 특히 죄수들을 관리하는 도도한 의식의 백인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로 이들 생각에 여기 이 그림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바로 아시아인. 그렇게 논리적으로 나를 위로하며 이해해보려 했었다. 이곳 몇 달 체류 중 또 하나의 기억은 돌고래 떼들의 호위를 받으며 한참 멀리 나가 도달한 캥거루 아일랜드, 그곳 골프장은 잔디가 아니라 아예 돌밭이었다. 북부 뉴햄프셔에서 눈 위에서 빨간 공을 치던 그때 못지않은 별미였다.  

그런데 오늘 새삼, 이 선수들이 참 아름답다 하는 것을 느낀다.

몸매나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경외감이라고나 할까?

지금 화면에 보이는 저 경지에 도달한 모습 이전에 이들이 겪었을지도 모를 좌절감 회의감 집념.

서 있는 공을 친다는 것은 움직이는 공을 상대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 자신과의 싸움.

예쁨에는 혐오감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아름다움엔 그런 것이 있을 자리가 없다.

하긴 어디 스포츠뿐이랴. 어느 분야건 자신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향기를 품어내는 그런 아름다운 존재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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