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은희경의 소설을 읽을 땐 언제나 그렇다. 첫 문장에 빠지고 첫 페이지에 빠지고 그래서 책 마지막 장을 읽을 때까지 덮을 수 없고.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닌데도 그렇다. 제각기 다른 내용 다른 분위기의 중단편소설 7편을 한권으로 묶은 책인데도, 한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당연한 ‘휴식시간’에조차 긴장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 무슨 짜릿하고 극적인 스토리라인들 모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테마나 줄거리전개 관점에선 오히려 진부한 쪽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때로는 주인공 남자의 차디찬 나레이션으로 때로는 여자 주인공의 ‘횡설수설’로 펼치는 작가의 날카롭고 차디찬 생각유희 거기에 빠져 마치 최면에 걸린 듯 헤어져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선과 악, 우와 열, 원래 소설이란 세계에선 그런 개념구분이 설 자리가 없다. 작가는 바로 그 점을 교묘하게 역으로 보여준다. 밖에서 보는 세계가 아니라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그런 시각으로, 비꼬는 듯 내뱉는 문장 하나하나 그 어느 것도 잘못 끼어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게임에 빠졌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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