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틀이의 생각세계

‘꿈 가불해 쓰기’

뚝틀이 2012. 12. 9. 21:18

사흘 전 그날 아침. 밤새 내린 눈, 수북이 쌓인 눈을 보며 놀란다. 茫然自失.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 안 되겠네. 이 정도 눈엔 움직이기 힘들겠네. 이번엔, 오늘은, 그냥 자네들끼리 좋은 시간 갖도록 하지.

아무리 차분히, 상세하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줘도 저쪽 반응은 짧고 단호하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정리’된 것으로 치고 편한 마음으로 지냈다. 책 보다, 모니터 들여다보다, 창밖으로 눈을 돌려 설경을 즐기다 그러면서.

 

저녁 무렵 울리는 전화소리, 성준이 목소리.

자리를 같이 못하게 되어 하는 안부전화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지금 가고 있는” 중이란다. 달수랑 함께.

그쪽 모임 포기하고 여기로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돌아가라 이야기 해보지만, 체인을 이미 샀고 안 되면 걸어서라도 오겠단다.

얼마 후 또 다시 울리는 벨, “곧 도착”이란다.

‘에이그, 못 말리는 친구들’ 속으로 혀 끌끌 차며, 내 이들 성정 잘 알기에, 저녁이라도 같이 할 생각에 밥솥 스위치를 누른다.

 

이들의 목적은 ‘납치.’ 얼마나 정신없게 그 ‘과정’이 집행되었던지, 산길을 내려온 다음에 보니

옷은 집에서 입던 편한 차림 그대로, 전화기는 집에 그냥, 신발은커녕 슬리퍼, 그런데 그 슬리퍼도 후줄근한 것 더구나 짝짝이.

그보다 더했던 것은 체인. 체인이라는 게 참 좋기는 좋다며 연방 감탄했었는데, 막상 차에서 내려 보니 이미 어디에선가.......

 

반가운 얼굴들이 맞는다. 해마다 보는 친구들, 오랜 세월 후 귀국한 친구, 또 아이 맡겨놓고 오랜만에 풀려나온 친구도 있다.

삶에 찌든 중년의 모습들. 아니 몇몇 얼굴엔 ‘원로’의 징표까지 확연하게 찍혀있다.

하긴, 이들 중 상당수는 내 이들과 함께했던 당시 그때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들었으니...

 

편한 마음으로 있다 붙잡혀 온지라, 딱히 준비해간 이야기는 없고, 그래도 무슨 이야기인가는 들려주는 것이 순서 같고. 그래.

‘꿈 가불하기’

 

지금 여러분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원하는 목표, 그곳을 향해 매진하는 단계.

목표를 향한 안타까움, 옆 사람과의 비교에서의 괴로움. 그런 것에 짓눌려, 어떤 면에선 심적으로 참 힘든 시기.

 

삶이란 게 무엇인가.

세상은 이 잔, 삶은 이 잔 속 브라운운동 한 가운데서의 움직임, 인간이란 이 속에서 발버둥 치며 ‘생각하는’ 존재.

누구에게는 그 부딪침이 목표 쪽 운동이 도움 되지만, 또 누구에게는 그 부딪침 튕김이 견딜 수 없는 방해가 될 뿐이다.

‘운’이란 건 바로 그런 것. 실력 또 노력 못지않은 이 ‘운’에 의해 목표에의 여정이 좌우되는 것이 바로 삶이란 그림.

 

그런데, 삶이란 게 무슨 시간표인가? 목표 다음에 꿈 그런 순서가 정해져있는 그런 시간표?

꿈이란 아름다움, 꿈을 즐기는 그 행복도 브라운운동에 좌우되어야하나?

 

끌어 쓰자. 앞당겨 끌어 쓰자. 꿈을 가불해 쓰자.

사랑하는 내 옆사람과 함께,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오늘 당장 그 꿈의 일부라도...

 

안다. 내 알아. ‘말이야 뭐...’ 그런 식으로 쉽게 공감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난 내 지나간 삶을 돌이켜보며 진심으로...

 

즐겁게 웃고 떠들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정도 1시도 넘은 시간.

내려주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달수와 민규에겐 그저 미안한 마음뿐. 더구나 달수는 두 번 왕복에 거의 7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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